#21819번째 포효

평소에도 생각하곤 했지만 당신은 잘생긴 편은 아니다. 디스하는게 아니고, 신기해서 자꾸 말하게 된다. 내가 줄곧 찬양하던 각종 연예인의 얼굴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흔한 외모인게.

내 글이 조금 고루하고 너저분할 수도 있지만, 잘생기지 않은 당신에 대해서 조금 적어보려 한다.

 

유난히 덥던 이번 여름,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평소에 내가 싫어하던 브랜드의 카페인지라 알바가기가 많이 귀찮았다. 그래도 또 구하기는 더 귀찮아서 그냥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날도 귀찮음을 무릅쓰고 출근해서 카운터에 앉아 웹툰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걸어들어왔다. 

'내 또래로 보이는데 부지런하네-아르바이트만 아니였다면, 9시는 나에게 한밤중이었을 것이다-'하는 생각에 흘깃흘깃 쳐다봤다.

 

눌러쓴 베이지색 모자에 평범한 반팔, 평범한 반바지, 수더분한 외모. 그리고 꽤 좋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하며 고개를 꾸벅.

 

-주문 도와드릴까요?

-네 아이스 카페모카요.

 

당신은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모자와 옷 색깔 때문에 커다란 리트리버 같았다. 나온 음료를 받아들고는 감사합니다, 라고 중얼거리고 꾸벅거리더니 총총 사라졌다.

그날 당신은 그냥 수많은, 평범한 손님 중 한 명 이었다.

 

그 다음날도 당신은 비슷한 시간에 왔다. 문을 당기려고 힘을 줬다가 '미시오'를 봤는지, 어정쩡하게 미는 바람에 종소리가 요란했다.

 

.- 죄송합니ㄷ..

 

당신은 종소리에 놀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소심하네'라고 생각했다. 소심한 건 딱 질색이다. 당신은 어제와 같은 음료를 시켜놓고 기다렸다. 동아리 같은 걸 하나보다,라고 스치듯 생각하고 커피를 만들었다. 나온 커피를 양손으로 받아든 당신은 나보고 어제처럼 꾸벅 인사하고 나갔다. 뭔가 내가 형식적으로 인사가 하는 인사가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냄새나는 인사였다.

 

그 다음 날도 왔다. 이번엔 문을 제대로 밀고 들어왔고, 기분탓인지 모르겠지만 묘한 뿌듯함이 보여 속으로 웃었다. 

잘생기진 않았지만, 표정이 풍부하다고 생각했다. 그 전의 날들과 같은 음료를 주문했고, 같은 자리에서 얌전히 기다리다가 같은 방향으로 사라졌다. 

학교나 집이 그곳인가 했는데, 몇 시간 뒤 우연히 당신이 아침에 사라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다. 

내일은 어디로 가나 봐야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그리고 그런 날 놀리듯이 당신은 며칠 보이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은데 꽤 궁금했다. 

손님도 몇 없었고, 뭔가 당신에 대해 추리하는 게 좀 재밌을 성 싶었는데.

 

일주일 쯤 지났을까 당신이 들어왔다.

머리를 했는지 하늘색 모자 사이로 삐친 머리카락들이 구불거렸다. 못내 반가웠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반가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이 반가움은 추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반가움이야!'라고 생각했다.

음료를 기다리며 당신은 전화를 했다.

 

-응 예그렇습니다, 며칠 뒤에 내려감다, 아 잘 챙겨먹고 있져, 아이고 걱정마시져, 응 영화보려고 나왔어, 아니 있어 걱정마,

어제? 조금만 마셨어 진짜로, 아이 믿으시죠, 응, 응 이따 또 하겠슴다 예 쉬십셔.

 

아마 부모님 같았은데, 말투가 친근해서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말 사이사이에 낮게 웃을 때의 웃음소리가, 어...꽤, 매력있었다. 

그리고 역시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너스레를 떨 때 나오는 표정은 묘하게 귀여웠다. 

나도 모르게 자꾸 찾게되는 당신의 매력을 인정하는 게 민망해서 

'영화를 보는 거구나, 커피는 영화보면서 마시나보네'하는 생각들을, 그리고 당신의 웃음소리를 컵 속에 넣어버렸다.

 

평소처럼 음료를 받은 당신은 인사를 하다말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캐리어가 필요없다고 말한 당신은 카페밖에 나가 방금 받은 커피를 목에 털어넣고 돌아왔다.

되게 멋쩍어 하면서 다음 커피를 기다리는 모습이 좀 웃겼다. 혹시 술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초코를 조금 더 넣었다.

이정도 호의는 누구나 베푸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그리고 조금 더 친절하게 인사했다. 형식적으로 들리지 않게, 톤도 부드럽게, 멘트도 다르게.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어, 아,네, 감사합니다 꾸벅꾸벅

 

받은 인사가 황송하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나가는 당신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냥 봤다. 

묘하게 영화관 쪽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이 아쉬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두세시간 후 당신은 돌아왔다. 책을 들고.

같은 커피를 시켜, 조금 안쪽 자리에서 몇 시간 쯤 책을 읽었다. 당신이 책을 읽는 그 몇 시간 동안, 난 점점 많은 게 궁금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봤는지 묻고 싶었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정말 웃기게도 당신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내가 좋아할 만큼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난 당신을 고작 아르바이트생으로서 본 게 전부인데,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어이가 없었고, 쓸데없이 등판한 개똥같은 자존심 때문에 그 뒤로도 꽤 많은 시간을 당신에 대해 궁금해 하기만 하며 보냈다.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는 '내가 말건다고? 내가 왜? 아니 솔직히 나 정도면 말 걸고 싶은 여자 아닌가?'라는 개똥같은 생각과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다.

진짜 개똥에 대기도 미안한 바고같은 생각이었다. 대신 궁금증을 핑계삼았다. 이것저것 궁금해서 묻지 않고는 못배기겠노라고,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그리고 얄궃게도 당신은 내가 행동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터 나타자지 않았다. 정말 내가 환상을 봤다는 듯이 당신은 발길을 뚝 끊었다.

 

개강이 다가올 즈음, 나는 알바를 그만두었고 대신 그 주변을 맴돌았다. 그 카페에 죽치기도 하고, 그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의 얼굴을 일일히 훔쳐보기도 했다.

집이 근처일것 같아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몇 시간씩 걷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수없이 짜증이 났고 그래서 '아 더럽게 비싼 인연인가보네'라고 털어내려고도 해보았다.

근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연애를 한 것도 아닌데 서글펐고 화가 났다.  한 번 만나보기라도 했으면 그때 느낀 단점을 계속 상기하면서 밀어낼텐데 그것도 안되는 상황이고,

'당신은 신포도야'라고 다독이기엔 너무 많은게 궁금했다. 미친. 만나본 것도 아닌데 자꾸 궁금증을 빙자한 내 마음만 부풀었다. 

잘생기지도 않은 그 얼굴을 계속 까내리려고 해도, 어느 샌가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매력있게. 

 

하, 당신이 다시 태연하게 내 앞에 나타났으면 좋겠다. 이젠 인정하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을테니까. 인정한다. 당신이 보고싶다. 매력있다.

내 기억 속에서 조금씩 각색까지 이루어져서, 지금 당신은 더럽게 매력터진다. 지금 오면 내가 마음 죄다 꺼내줄 것 같다.

태연하게 와서 카페모카 달라고 해라. 백 잔, 천 잔도 사줄테니 같이 마시자.

 

난 요즘도 그 카페에서 내 입에도 안맞는 카페모카를 마신다. 

언제까지 이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잠겨죽기 전에 나에게 밀려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노꼴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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