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전 대학시절 3번의 연예경험을 하고 와이프를 만나게 되면서

 

느끼게 된것이 외모보다는 가치관이란걸 알게되었습니다

 

명품 좋아하는 여자, 술과 나이트를 좋아하던 여자, 집착하던 여자, 저의 연애경험은 이러했습니다.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했던 소개팅 3번의 경험은 남중, 남고, 공대로 이루어지는

 

테크를 탄 탓에 여자의 대한 환상과 다 이런가 보다라는 생각에 사귀고 헤어졌었습니다.

 

(만났던 대부분의 여자들은 비슷 했으니)

 

그러다 군 재대후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습니다.

 

소개팅 자리에 화장도 하지 않고 청바지에 흰면티.... 두꺼운 안경... 뒤로 묶은머리... 짝퉁 이스트백

 

좋게 말해 수수했다고 말할수도 있고, 안좋게 이야기 하자면... 흠 와이프니깐 패스하기로 해요 ㅎ

 

첫 만남이 좀 신선했습니다.

 

보통의 소개팅에서는 어느학교 다니냐? 집은 어디인지, 차는 있는지,등

 

경제력과 학벌을 먼저 확인했었던거 같은데...

 

제 와이프는 첫 질문이 " 꿈이 어떻게 되세요? " 였습니다.

 

참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국민학교 이후로 꿈이란걸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거 같았는데....

 

그때 대답했던건 행복하게 사시는 부모님이 생각나서 " 행복하게 살고 싶다 " 라고 대답했었습니다.

 

소개팅에 억지로 끌려나온듯한 와이프(계속 무표정했던)가 처음으로 웃어줬습니다.

 

그땐 왜 그랬는지 지금은 후회되지만ㅡㅡ, 웃는게 참 해맑고 이뻐보였습니다.

 

그 이후 서로 학교다니면서 힘든점이나, 즐거웠던일들... 가족이야기들을 이야기하며 헤어졌고

 

그렇게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와이프와의 연애생활 추억은 저보다 3살이나 어린 와이프에게 거의 매일 혼났던거 같습니다.

 

첫 데이트를 서울랜드에서 했을때 였습니다.

 

아무생각없이 자유이용권을 사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그렇게 첫 데이트를 하며

 

집에 데려다 줬더니, 집앞에서 와이프가 그러더군요!

 

오늘 너무 즐겁기는 했지만,

 

무슨 돈으로 이렇게 비싼 밥을 먹었는지, 오늘 택시비가 얼마나 나온줄 아냐고.....

 

놀이기구 몇개 타지도 못하는데 자유이용권은 왜 삿냐고등 ㅡ_ㅡ;;

 

잔소리만 한가득 하고, 조심히 가라는 인사하고 집에 들어가더군요

 

참, 그때 어이도 없고 모 이런애가 있나 싶었습니다.

 

"뽀뽀라도 한번 할수 있을까란" 기대감을 갖고 있던차에 잔소리 폭탄맞고 멘탈이 날라갔던거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 강제노역(?)을 당하게 됩니다.

 

만나자마자 아무말도 없이 제 자취방으로 가자고 하더니

 

생뚱맞게 " 오빠, 저 믿어요? "라고 물어보더군요

 

남녀가 할 말이 바뀐거 같았지만.....

 

단둘이 방에 있었기에 엄청 기대하고 므흣한 생각을 하며 " 응 " 이라고 했습니다.

 

" 그럼 오빠 통장, 카드, 집열쇠 나 줘요 "

 

"그리고 내가 과외하는 집 소개로 다른집 소개 받은거 있는데 수학이 약하다고 하니깐 오빠가 해요"

 

"오빠 밥은 학교에서 먹고, 걸어서도 가까우니 점심값포함 용돈 하루 4천원 이면 될거 같아요 "

 

" 저녁은 우리집에서 먹으면 되니깐 학교 끝나고 저녁때 되면 우리집으로 와요 "

 

당황해서 어버버 되는 저를 이끌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더군요 ㅡ_ㅡ;;;;;;;;

 

" 크음.... " - 장인어른

 

" 학생이 우리애가 말한 사람인가 보네 어서와요 " - 장모님

 

" 와 언니가 남자를 만난다더니 ㅋㅋㅋ 설마 했는데 진짜네 " - 처제 1

 

"오~~" - 처제 2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과 장모님과 처제들의 질문 공세, 나라잃은 표정의 장인어른

 

카드와 통장, 4천원 빼고 다 털린 지갑 ㅡ_ㅡ;;;;;;;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저녁을 얻어먹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는데도 날아간 멘탈과 놀란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더군요!

 

시키는 데로 학교 다니며 과외하고 일주일에 3만원씩 용돈받고,

 

매일 처가에서 아침과 저녁을 먹으며, 방학이 되면 일주일의 휴가(본가에 다녀왔음)후

 

방학기간동안 장인어른의 사출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3년을 지냈습니다.

 

데이트라고는 처가에서 밥먹을때와 주말에 도서관 가기전 자판기 커피나 캔음료마시며

 

공원산책하고 가끔 영화보는게 전부였습니다.

 

참 사람이란게 무서운게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적응(?) 길들여져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냐는 생각도

 

못하게 되더군요 ㅡ_ㅡ;;;; (세뇌란게 이렇게 무서운건가봐요)

 

이런 생활을 반복하며 학교 졸업을 하고, 운좋게 바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취직된 회사에 출근하기전,

 

저희 집에 첫인사하러 갔을때 와이프의 행동때문에 결혼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애교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 여자가 맞나 싶을정도로

 

저의 아버지 옆에 착 붙어서 계판판에 계란담고,

 

며느리감 왔다고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콧소리에 애교...... ㅡ_ㅡ;;;

 

여자의 태세전환을 보며, 무서움을 느꼇지만 이런면도 있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과 저녁을 먹고, 과일을 먹는데 통장 5개를 꺼내더군요!

 

기억도 못하고 있었는데, 3년전에 은행에 끌려 가서 만들었던 통장들 이었습니다.  

 

" 오빠가 학교 다니면서, 부모님이 주신 학비와 용돈, 그리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모은거에요 "

 

" 부모님이 힘들게 고생하시면서 주신 돈인데 막 쓸수 없다고 오빠가 관리해 달라고 해서요 "

 

매월 5일이되면 저도 모르는 일들이 벌어졌었나 봐요 3년동안....

 

청약통장- 10만원

 

3년만기 적금통장- 50만원

 

은행사 보험- 16만원

 

자유입출금통장 - 남는돈을 넣어뒀더군요 ( 200만원정도 )

 

? 통장 (금액과 날짜 상관없이 넣는 그런게 있었는데)- 총 입금 2100만원

 

나중에 안 사실인데 장인어른께서 방학때 아르바이트 하는 월급외로 제 학비를 따로 내주셧더라구요!

 

보험 빼고 5천만원 정도 모였던거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자기 통장 2개를 꺼내더군요!

 

어렸을적부터 용돈을 모은 통장과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모은 통장...  6천만원이 넘었습니다.

 

저희가 아직 어려서 많은 돈을 모으지는 못했는데

 

오빠와 이돈으로 함께 시작하고 싶다고....  와이프에게 프로포즈를 받았습니다. 부모님앞에서 ;;;;

 

행복하는 부모님과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서울에 올라와서

 

3년동안 저를 핍박하며 모은 돈과 제가 쓴돈을 엑셀로 정리한걸 보여주며 그러더라구요!

 

" 오빠가 확인해 보고 이상하다거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말해줘 "

 

가계부(?)를 보는데 가슴 한편이 먹먹해져서 한참을 멍하게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저에게 줬던 용돈부터 같이 데이트하며 사먹은 껌값 300원, 자판기 커피값 400원,

 

돈먹은 자판기 100원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더라구요!  

 

 

 

6년의 연애와 결혼 10년이 되어, 함께 한지가 이제 16주년이 되었습니다.

 

제 용돈은 하루 5천원으로 천원이 인상되었고, 신용카드도 아닌 기프트 카드 50만원 짜리가 지갑에 있습니다.

 

기프트 카드의 용도는 간단합니다.

 

갑작스럽게 일하며 써야 될때나, 아이들의 선물등 용돈외 돈이 필요할때 사용합니다.

 

하지만 쓰면 영수증과 사용출처, 사유를 와이프에게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말해야 됩니다  ㅡ_ㅡ;;;;

 

다쓰면 다시 충천해서 주긴합니다만 잘 안쓰게 됩니다. ;;;;;

 

우리 딸들도 저와 별반 다를게 없습니다.

 

일주일 용돈 만원에 10만원권 기프트카드

 

어린 딸둘에게 너무 가혹한거 아니냐고 하겟지만

 

태어나서 보고 자란게 있어서 그런지 저처럼 불만도 없고, 당연한지 압니다.

 

애들 간식이라도 와이프 몰래 사주려고 하면 오히려 딸 둘이 연합해서 잔소리를 할 지경이니깐요

 

"엄마한테 걸리면 어쩔라고 이러냐고 ㅡ_ㅡ;;"

 

그리고, 제 유일한 취미라고 하면, 낚시와 게임입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취미들일겁니다.

 

어디까지나 조건부이지만 제 취미 생활을 보장해 줍니다.

 

평일의 게임하는 시간은 퇴근후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만큼이 게임을 할수 있는 허락된 시간입니다.

 

그리고 낚시는 금요일 퇴근후부터 토요일까지입니다.

 

토요일의 경우는 제가 무엇을 하던지 아무런 잔소리도 안하고, 제 시간을 허락해 줍니다.

 

대신 일요일은 와이프의 시간이지요

 

대부분 와이프는 차끌고 아이들과 고향집에 내려갑니다

 

저는 같이 가거나 아니면 처가에가서 끼니를 해결하고 놉니다 ㅡ_ㅡ;;;;;;

 

일단 집에서 가깝기도하고,

 

대학시절부터 그런 생활을 해서 그런지 처가가 본가보다 더 편안합니다.

 

사실 장모님이 우리 사위 안쓰럽다고 몰래 사주신 고사향의 컴퓨터가 처가에 있고,

 

낚시광이시자 낚시친구인 장인어른과 보통 금요일 밤에 밤낚시 갔다가

 

처가에 가서 그냥 일요일까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처가로 와이프는 시댁으로 가는 상황이 조금 우습기도 하고 매주 내려가기 구찮기도 해서,

 

애들 피곤하게 매주 모하러 가냐고 잔소리를 한적이 있었는데 와이프가 그러더군요

 

"우리 부모님이야 가깝고 하니 자주 볼수 있지만, 아빠랑 엄마는 그렇지 못하잔아!

 

"애들이 크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 그 나이때 볼수 있는것들을 나중에 다시 보여드릴수 없으니깐 그러지 "

 

 

저는 나름 행복하게 사는거 같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나서 스트레스란것도 크게 느껴본적이 없는거 같고,

 

구김없이 잘 자라는 애교쟁이 딸들 보는 재미와 언제나 즐겁게 사시는 양가 부모님들....

 

시월드 라며, 고부갈등으로 힘들다고 하는 세상에 그런거 없는것만으로도

 

와이프한테 잘해야 되는데.... 그게 참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

 

 

* 여자를 만나시게 되면 외모보다는 그사람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더 중요한거 같습니다.

 

* 여자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감히 한말씀 드려보고 싶습니다.

 

  본인의 가족에게 잘하는 사람을 원하시면 상대방의 가족에게 내가 원하는 것만큼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Give&Take 참 당연한거자나요!

 

  옛날 유행했던 광고에 "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잔아요"란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 배려하려는 마음, 아끼는 마음을 표현할줄 아는 사람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Posted by 노꼴甲
,

 

1

이과 선배님은 능력있는 선배처럼 보이잖아요.
정말 멋집니다!









2

문과는 법률에 강하다지?
무슨 일 있으면 잘 부탁할께.








3

문과는 한자 시험 만점일 거 같아. 부러워!









4

하아...나도 컴퓨터 조립하는 법 알고 싶은데.
이과는 그런 거 잘하지?
굉장하네.






















































5

이과에선 곱셈, 나눗셈 배우지?
굉, 장, 해.









6

문과 애들, 문장 같은 엄청 길게 쓰던데.
그런 거 전부 읽기는 하는 거야?
아니, 아니, 아니.
나쁜 의미로 말하는 건 아냐.
진짜로.









7

문과는 정말 좋겠다.
펑펑 놀 수 있잖아?








8

이과 출신들은 그저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쓴 거 뿐인데
엄청 지적으로 보이잖아.
그거 정말 부러워.
부럽다구?








10

문과는 정말 굉장하다니까!
공부 같은 거 하나도 안 한 바보도 졸업할 수 있으니까!
아니 너희들이 바보 같다는 소리는 아냐.








11

이과는 남자뿐이라서 정말 부러워요.
여자가 있으면 역시 좀 불편하니까.








12

처음에는 칭찬했잖아. wwwwwwwwwwwwwwwwww








13

철학과 정말 좋지?
취직할 때 편할 거 같아.








14

문과 사람들은 인생에 하등 도움도 안 되는 싯구절이나 외구고 있다지?
와아, 훌륭한 사람들이야. www








15

이과 출신이라면 프로그램 만들기 따위는 간단하지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한테 컴퓨터 부품 추천해주는 게 취미라면서요?








16

이과에선 멋진 기호같은 거 사용하는 거 같던데.
나중에 좀 가르쳐 줘요~








17

문과는 정말 좋겠어요.
대학에 놀러만 다니니까.
그렇게 낙관적이고 무계획적인 점, 존경스러워요.
난 앞날이 무서워서 그렇게 펑펑 놀러다니지 못 하겠던데.








18

예상 그대로의 전개. wwwwwwwwwwww








19

이과 출신은 전부 오타쿠라지요?
그거 엄청 즐거울 거 같네요.








21

이과에 가면 동성 친구가 잔뜩 생기니까 부러워요!
그리고 거기선 매일 덧셈, 곱셈 하는 거죠?
끝내주네!!








24

문과는 논문쓸 때 인터넷으로 뒤지면 끝난다고 하던데.
나도 논문 그렇게 쓰고 싶어라~








26

진짜로 칭찬하는 녀석이 없어. www








27

이과 사람들은 머리 회전이 굉장히 빨라요.
그러니까 여자 마음을 쪽집게 읽어내서 모두 인기 만점이겠죠?








28

>>27

뿜었다. wwwwwwwwwwwwww





뿜었다...









32

>>27

문과만큼 인기가 있는 건 아냐.
이과는 이론적으로 생각하니까 뭐든지 간결하게 끝나거든.
문과는 똑같은 소리를 문장 길이만 바꿔서 잔뜩 써놓은 다음
그걸 시라고 지칭한다지?
난 그게 더 굉장한 재능이라고 생각해.







30

이과는 정말 좋겠다.
아침 일찍부터 등교해서 하루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실험 삼매경.
이거야 말로 청춘이지!








31

그래!
이과 사람들은 전부 이론적으로 생각해!
그러니까 연애도 이론적으로 하는 거야!
역시나, 이과!
우리랑은 경험치가 달라!








35

이과는 여자랑 엮일 일이 없어.
난 그게 정말 부러워.








37

문과 사람들은 전부 멋쟁이야.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면 모두 연인이 생긴다지?
응?
아차!!
너는 벌써 오른손이 연인이었지!
그러니까 너만 빼고 말해어야 했는데.
미안, 내 정신 좀 봐.

AHAHAHAHAHAHAHAHAHA.








38

>>37

예, 그렇습니다.
멋쟁이들 뿐이죠!
그래서 전 따라가는 것만 해도 벅차답니다.

하지만 역시 이과 분들만 못 해요.
여러분들은 정말 머리가 좋으니까 여자 친구 만드는 것 쯤이야 간단한 일이겠죠.
저는 여자들한테 인기 많은 이과 분들을 볼 때마다 정말 부럽답니다.
휴대 전화 주소록에 여자 전화 번호가 한가득 있을 테지요?








39

>>37

하하하, 거 참 부끄럽네요.
여자 조교수 번호라면 몰라도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요!
문과 분들은 외국어도 술술 하실 테니까 유학 가는 것도 쉽다고 들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외국에 가고 싶어서 유학을 가도 인기 만점.
마치 종이장처럼 얇고 넒은 인간 관계...부러워요!!








40

이과 분들은 패션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 많으니까.
옷차림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서 편할 거 같아요.








41

문과 사람들은 취직해서 영업직이 되면 고객들한테 클레임이 들어올 때
땅에 엎드려 빌면서 개처럼 멍멍 짖는다고 하던데.
누가 더 개처럼 짖는지 비교까지 하고, 멋진 인생이네요.








42

확실히 문과가 이과보단 연봉이 높은 편이죠.
대기업 정규직에 취직한다면 말이에요.








43

문과 사람들은 매일 취업 활동 하느라 저절로 운동이 되서 좋겠네요.
얼마나 싸돌아다녔으면 전국 기업 위치도 빠삭할 테죠.








44

이 스레, 무서워. wwwwwwwwwww









46

정치가들은 대부분 문과던데...
머리도 좋고 언변도 화려하고 리더쉽도 있어요.
얼마나 말솜씨가 뛰어난지 사기를 쳐도 누구 하나 욕하는 사람이 없다니까요.








49

문과는 근사해요!
그러니까 어떤 면이 근사하냐면...으음...어...
...어쨌든 근사해요!








51

문과 사람들은 정치가나 변호사가 되서 사람들 뒷통수를 치는 거죠?
정말 훌륭하십니다.








56

문과는 굉장해!
왜냐면 산수도 모르는데 대학에 들어가거나 졸업도 할 수 있으니까!








57

문과는 대학 시절 펑펑 놀아도 연봉이 높으니까 부러워.








61

왜 이래...무섭다구.








65

이건 이미 칭찬이 아니라 야유 스레. w







69

문과는 정말 굉장해!
말을 할 수 있으니까!







84

싸구려 같은 월급에 문과 출신 밑에서
노예처럼 부려지는 대도 화도 안내다니...

이과 여러분처럼 희생 정신 투철한 분들은 처음 봅니다!








92

이과 출신이 개발한 상품에 기생충처럼 들러 붙어서
돈을 벌어 먹는 문과 여러분들의 두꺼운 낯짝에 경의를 표합니다.







99

역시 이과는 칭찬하는 척 하면서 비꼬는 능력이 굉장하네. ww
연구실에 며칠이고 틀어박혀 날밤새서 닦은 능력인가? ww








101

천만에요.
세치 혀로 나불 나불 나불, 평생 그걸로 벌어 사는 문과 분들은 못 따라 가죠.







143

이과 분들은 연구를 하시죠?
음...그리고 또 뭐 하십니까?







144

그래, 우리는 연구 밖에 안 한다.
그럼 문과는 뭐 하는데?







151

>>144

문과를 바보 취급하지마!
취직하면 커피 담당, 복사 담당, 청소 담당 etc etc etc
고등 교육까지 받았으면서 온갖 잡무를 다 떠 맡는단 말야!
인생 참 험난하게 살아가는 분들이라구!







162

문과는 인기 많아서 부러워. wwwww








164

>>162

아뇨, 이과 분들이 더 인기 많죠. w








167

...우리 이제 그냥 솔직해 지자...
차라리 욕을 해라, 욕을.








169

>>167

경애하는 문과 여러분들에게 욕이라니요.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입니다.








173

>>167

저도 존경하는 이과 여러분들에게 폭언을 할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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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꼴甲
,

 

1

지금 현재진행형이라 무섭다.




2

역시 낮에는 아무도 안오나.
친구도 일한다고 전화 안 받고...
어이~ 누구 없어?




3

나라도 좋다면 들어줄께.





4

우와!! 들어줘!
누구랑 이야기하지 않으면 미칠 거 같아.





5

지금 스토킹을 당하고 있어.
오늘 아침 10시부터 메일 100통 정도 오고 있다.
전화도 30통 이상 걸려왔다.




6

상당히 심한데.
좀 더 상세한 설명을 해줘.





9

만났을 때부터 이야기할까.
내가 일하는 직장에는 도둑고양이가 자주 드나들었어.
그래서 나는 사장님 명령으로 점심 시간 후에
고양이들한테 먹이를 나눠주곤 했지.




11

2개월 정도전이었나.
그 여자가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다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내가 고양이랑 놀고 있는 모습이 즐거워보였던 모양이다.




12

고양이 좋아해요?
이 말을 시작으로 말을 트기 시작했다.
성격이 밝고 얼굴도 예쁜 여자였다.




13

헌데 이것이 악몽의 시작이었다...




19

어느날은 그녀의 손등에 붕대가 감겨 있는 걸 보고
어째서 이러냐고 물어보니
 근처에 사는 고양이한테 긁혔다고 말했다.
고양이 발톱에 긁히면 상처가 붓기도 하니까 말야.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21

그리고 1주일 정도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때까지는 거의 하루 간격으로 얼굴을 보곤 했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다.
본인이 말하길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당시에는 별 의심없이 아팠겠다는 말밖에 안했다.




23

지난 주 낮에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함께 식사라도 어떄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나도 한번 권해볼까...
이런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조금 기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거절해야 했는데...

그날 저녁 6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25

할 일이 너무 많아 전화로 약속 시간을 1시간 미루면 안되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했기 때문에 약속 장소에 1시간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화를 냈다.

여자 [늦었잖아욧!]

나 [에? 전화했잖아.]

여자 [그런 뻔히 보이는 거짓말은 아무래도 좋아요!
        다음부턴 주의하세요!]
       
이때부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당시에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식사하러 갔다.

그 후 내차로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 줬는데,

여자 [잠시 들러다 가지 않을래요?]

나도 남자니까 말야, 그대로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28

그녀는 부끄러워하면서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렇게 말했다. 나 역시 그녀에게 호감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 자리에서 사귀기로 결정했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지냈다.
그러다 내 한마디에 그녀가 갑자기 변했다.





32

나 [그럼 오늘은 얌전히 돌아갈께. ww]

이 한마디에 그녀의 표정이 험해졌다.
그리고 큰소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어째서?!!]
[당신도 내가 싫은 거야?!!]
[야한 일 하고 싶잖아?!]
[계속 옆에 있어줘.]

여러가지 말을 했지만, 지금은 기억 안난다.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34

>>32

이건 위험한 냄새가 엄청나게 나는데....




35

그 이후로 스토커로 변한 거야?




36

좀 무서웠지만, 이런 성격도 있는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난 적당하게 노는 것처럼 사귀는 건 싫으니까
앞으로 천천히 관계를 늘려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야한 일은 하지 않았지만, 그대로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다음날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중 같은 사무실에 일하는 여자가
평소 함께 다니는 여자가 왔다고 전해줬다.
서둘러 나가보니 그녀가 내 도시락을 싸왔다고 말했다.

쑥스러운 듯한 표정의 그녀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에,
난 고맙다고 말하며 도시락을 받았다.





37

>>36

좋은 여자잖아.




38

>>37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는 건가.




39

넌 지금 크레모어에 연결된 인계철선을 건드렸어.




41

그리고 2시간 후 또 사무실 여자가 날 불렀다.
그 애가 또 와있다면서...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그녀에게 가보니
이번엔 디저트를 가져온 듯 했다. 이에 나는,

[고마워. 그런데 지금은 일하는 중이니까, 나중에 집에서 같이 먹자.]

그렇게 설득하니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다음날 또 왔다.




44

계속 이러면 회사 사람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기쁘긴 하지만, 이렇게 자주 올 필요는 없어.]

[지금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든, 좀 바빠. 미안.]

이때 처음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체험했다.

어라~ 하는 사이에 머리에 통증이 밀려들었다.
그렇다. 나는 도시락 상자로 얻어 맞은 것이다.
게다가 딱딱하기 그지없는 보온 도시락.





46

그여자는 >>1의 집 주소 알고 있어?




49

거기다 한번이 아니라 계속 때렸다.
숨을 거칠게 내쉬며 도시락 상자를 휘둘렀다.
회사 앞에서 말야.

회사 사람이 그녀를 보고 급히 달려와서 멈춰줬지만,
그녀는 소리를 지르면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당신을 좋아하는데!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그렇게 소리치면서.






50

>>46

....응.





53

그녀가 가진 트라우마의 원인이나 가족 구성에 대한 건 몰라?




58

맞은 곳이 좀 찢어졌는지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도 떠들기 시작하고, 큰소란으로 번졌다.

경찰을 부르잔 말도 있었지만, 일단 그만두게 했다.
일에 지장이 생길수도 있으니까.
거기에 여자 한명 정도는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단 생각도 있었고.

그녀도 20분 정도 날뛰고 나자 진정됐는지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단 집으로 돌려 보냈다
나는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몰랐지만 나중에 회사 동료가 알려주길

[모습이 안보이게 될 때까지 몇십번이나 뒤돌아보더라구.]

이건 좀 무섭다고 생각했다.
밤에 만나서 헤어지자고 말하기로 했다.
부엌칼 같은 걸 가져오면 무서우니까
회사 동료랑 함께 만나기로 했다.




62

분명 소리지르며 날뛸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평상시 그녀와 다를 게 없었다.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도,

[응. 알았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납득했다.
그리고 돌아가버렸다.

헌데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선,

[외로워요. 외로워. xx씨, 어째서 헤어지잖거에요.]

이렇게 말하는 거야.

>>53

잠깐 기다려봐.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할테니.




66

나도 스토킹 당하고 싶은데.




69

>>66

스토킹 당하고 싶은 사람은 스토커가 안 달라붙는구나.
역시 세상의 밸런스는 절묘해.




70

난 그녀의 말에 화가 났다.

[시끄러! 네 그런 점이 싫어졌어! 이제 전화하지마!]

그러자 그녀가 울면서,

[미안해요. 이제 안할테니까.]

난 그대로 전화를 끊고 잤다.
다음날 출근해서 회사 동료들에게 어제 일에 대한 사과를 했다.
회사 분위기는 평소랑 다를 게 없었다.

점심 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처음에 내가 고양이 먹이를 주고 있다고 썼지?
바로 그 고양이가 표적이 되었다.
고추를 엄청나게 넣은 음료수를 고양이들이 자주 오는 곳에 놔두거나
다리를 절름거리는 고양이도 나왔다.




71

고양이에게 손을 대다니!!
용서가 안되는데!!




73

고양이한테 무슨 짓이야!!!




74

고양이가아아아아아!!!!




76

고양이한테 손을 대다니...




78

너희들 고양이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wwwwwwwwwwww




79

물론 그녀가 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짓이라 생각된다.
이걸 공개적으로 떠들면 큰소란으로 번지니까
우선 사장님에게 상담하기로 했다.

사장님은 우리 아버지의 친구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나를 친자식처럼 돌봐주셨다.

상담 결과 우선 그녀의 부모님이랑 이야기해보란 말을 들었다.

드라이브 도중 이 앞이 부모님 집입니다. 라는 말을 들은 적 있기에
그 근처 문패를 일일히 확인한 뒤 찾아냈다.





83

그날밤 나와 사장님은 그녀의 부모님네 집에 들이닥쳐
그간 있었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통곡, 아버지는

아버지 [...또...입니까.]

나 [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고등학교때 심한 괴롭힘을 당한 듯 했다.
그 이후 그녀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에게 매달려서
소란을 일으키는 일이 많았다고.
그녀의 행동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 말을 듣고 나자 왠지 조금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사장님이,

사장님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과연 사장님, 말도 안했는데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귀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일을 연이어 계속 했던 것 같다.
고소를 당할 뻔 한 적도 있다던가.




85

사람 정신이 망가지려면 그만한 사연이 있는 법이니까 말야.




88

사장 말이 맞아.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혹여 불쌍하다 생각하지마.




89

사장님이 집까지 바래다 주셨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던 중 그녀가 맨션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결국 그날은 사장님 집에서 묵게 되었다.

다음날, 마치 스파이마냥 조심스럽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무서웠다 생각하면서 욕실에 들어가 있던 중,

[띵동.]

진심으로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떨었는데.
진정하고 살펴보니 친구가 온 거 였다. w




90

친구가 집에 들어와서 한 첫마디가,

친구 [너 알고 있었어?]

나 [뭐?]

친구 [몰랐나...그럼 진정하고 내 말 잘 들어.]

나 [...설마...여자가...]

친구 [응, 맨션아래에서 만났어. 네 친구라면서 방번호를 묻더라고.
        난 그 사람도 모르고, 여기 사는 사람도 아니라고 둘러댔지만.]

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맨션에 들어가는 사람들한테 내방주소를 물어보고 있었다.





91

우와, 등골이 서늘해졌어.




92

으헉, 크헉. 후덜덜덜덜덜덜.




93

온다....반드시 온다....





94

스토커의 행동력은 장난이 아니구나.




95

진짜 무서운데.




97

너 때문에 오늘 혼자 화장실 못가게 됐잖아.




98

이사할 생각으로 친구랑 상담을 하던 중,


그녀가 왔다.

탕탕탕! xx씨! 문열어줘!

너무 무서워서 경찰을 부르려고 했지만....
전날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 차마 부르진 못했다.
이사할 때까진 참아야 겠다고 생각했을 뿐.
다행히 이웃집 한쪽은 빈집에 다른 쪽은 밤에 일을 나가니까 괜찮았다.




100

>>1

어째서 그렇게 불안정한 여자를 부모는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거지?
병원에 가지 않으면 이 상태가 더 심해질거라 생각해.





101

그 여자는 누구 닮았는데?





106

우선 친구한테 연락해서 집에 와달라고 했다.
오는 도중 그녀가 눈에 띄지 않으면 방에서 나가기로 계획을 세우고
서둘러 가방에 옷을 담은 뒤 한밤중에 도망쳐 나왔다.

>>100

그녀의 부모님 중 아버지한테 병이 없어서
딸을 병원에 보낼 돈이 없었던 거 같아.
그녀는 현재 독신생활중인데, 숙부네 빈집에서 살고 있어.
생활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101

그, 한국 여배우.
전지현인가? 비슷해.





109

현재 일은 쉬고 있어.

어제 사장님이 한동안 쉬라면서 휴가를 줬어.
사장님, 평생 따라가겠습니다.




111

일단 쉬는 게 좋아.
그렇게 큰일 겪은 뒤엔 더더욱.




114

좋은 사장이라서 다행이다.





121

그리고 3일 뒤에 집에 가봤다.
우편함에 편지가 20통 정도 들어가 있었다.
조금 무서웠지만 호기심에 편지를 뜯어봤다.

안에는 미안합니다. 이제 안할께요. 다시 만나주세요.
20통 전부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게다가 피가 묻어 있어.

섬찍한 느낌에 몸서리 치던 중,
문득 그녀의 손등에 감겨 있던 붕대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식사하러 갈 때 필요이상으로 손을 긁고 있었지.
너무 심하게 긁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고양이에게 긁혔다는 것도 거짓말 이었던 건가.
그녀의 부모님이 말했던 자해 행위란 게 그거 였던 거야.




125

으어....밝혀지면 밝혀질수록 무서워....





126

난 무서움 같은 건 거의 타지 않는 편으로
그녀에 대한 것도 무섭다, 무섭다 말을 그렇게 했지만
기실 내심 즐기고 있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편지를 본 순간 두려움이 단번에
현실이 되버려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더이상은 무리였다.
결국 그날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가구 같은 건 다음에 가져 가기로 하고
나는 집에서 나왔다.





128

그대로 맨션을 나와 차를 타려고 주차장에 나오니





그녀가 있었다.




130

도망쳐어어어어어어어어!!!!




131

이건 드라마화 결정이다. wwwwwwwwwwww





135

무서워, 젠장.




139

큰일났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축 쳐져 있었다.

[미안해요. 폐를 끼쳐서....
 저...옛날부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xx씨를 만나고....상냥하게 대해주셔서 기뻤어요...]

그 말에 나는,

[아니, 괜찮아. 이제 더 이상 안하면 되지, 뭐.
  내 말 오해하지 들어. 병원에서 상담같은 거 해보는 게 어때?
 딱히 네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그쪽이 감정 조절하기 편할거야.
 집이 어려워서 못간다면 내가 돈을 일부 내줄수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바보같은 소리를 한 거 같아. w





145

그리고

[나 일 때문에 이사하기로 했어. 이제 돌아오지 않아. 그러니까 건강해.]

이렇게 말하며 차에 타니까 그녀가 차를 발로 찼다.
잠깐 기다려. 너 아까 까진 얌전했잖아. wwwww

그 이후로는 전화와 메일의 폭풍우가 계속 되고 있다.
착신 거부는 간단하지만, 내가 거절하면 다른 사람한테 갈 거 같아서.
무섭긴 하지만 회사에는 나타나지 않으니까 진정될 때까지
참아볼 생각이야.




149

착신 거부는 간단하지만, 내가 거절하면 다른 사람한테 갈 거 같아서.

무서울 정도로 호인인데.




152

경찰에 전화하는 건 간단하지만,
애초에 죄가 거론할만한 건 없어.
스토커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내가 얻어 맞은 것 정도일까.
더구나 그렇게 되서 그녀가 더더욱 이상해지면 어떻게 해.
그러니 내가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사장님한테 이렇게 말했더니
너 진짜 바보구나. 하면서 웃으셨다.

































=================================================================







BG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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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병원비를 내가 대신 내주겠다고 하는 건 좀 이상하려나?




154

>>152

네 마음은 알 거 같아.





155

>>153

그만두는 게 좋아.
한번 도와준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평생 돌봐줄 수도 없잖아?





156

>>1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네가 나서면 안된다고 생각해.





157

>>155

평생 돌봐주겠단 생각은 없지만....
이대로 놔두려니 마음에 걸려.





158

>>1

긴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어중간한 상냥함은 그녀에게 독이 될 뿐이야.




160

나도 한마디 하지.
그만 둬.
가벼운 마음에 건드렸다간 똑같은 상황을 반복한 뿐이야.





162

공연한 참견에 불필요한 짓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병든 사람은 누군가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
인생엔 괴로운 일도 많지만, 즐거운 일도 많잖아?
헌데 마음이 병든 사람은 그런 걸 즐길 수 없으니까.
내가 조금 도와주면 그녀도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거기다 이상해지기 전까지 그녀는 정말 일등 신부감이었어. w
정말 좋은 여자였다구....




164

>>1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되도록 빠른 결말을 짓는 쪽을 추천합니다.




165

>>1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울었다.




166

>>1

분명 그런 사람을 보면 동정이 가지.
하지만 난 >>158의 의견에 동의한다.
어중간한 각오는 두 사람을 괴롭게 할 뿐이야.




169

익명으로 돈을 내는 건 어떨까?
그녀의 부모님한테 돈을 건네주는 거야.




171

외모도 괜찮았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이 맞았어.
솔직히 외모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173
>>1이 배려에 눈물이 날 정도다.
하지만 동정이랑 애정은 구분해야 돼.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손을 잡아주면 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관계를 끊어야 해.




174

돈을 주는 걸로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경우도 있어.





176

이런 걸 밝힐 생각은 없었지만....
난 중학생때 친부모님이랑 동생을 사고로 잃었어.
그래서 지금 일하는 회사의 사장님이 날 키워주셨지.
당시 사장님이 날 거둬준 건 동정이었는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준 덕분에
나는 이렇게 제 앞길을 닦을 수 있는 곳까지 올 수 있었어.
그러니까 보답을 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177

>>176

보답이라면 사장한테 해야 되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181

>>177

물론 사장님에겐 평생에 걸쳐 보답할 생각이야.
내 힘이 되준 사람들 전원에게도.
하지만 그걸로 끝나면 보답이 아니라고 생각해.
사장님이 이렇게 말했어.

누군가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와라. 그게 나에 대한 진짜 보답이다.

일단은 사장님이나 다른 사람들이랑 상담을 해볼 생각이야.
여기 있는 모두도 의견 적어줘서 고마워.





183

사장이 너무 좋은 사람이야.





184

>>181

사장이랑 상담해봐.
우리들보다 너에 대한 걸 더 많이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 드라마는 언제 나와?





188

아참, 여담이지만 그때 그 고양이는 지금 사장님집에서
건강하게 뛰놀고 있다. w





190

그리고 메일 오는 것도 아직 안 멈췄어. w
배터리가 너무 빨리 떨어지는데...





192

>>190

이 스레 세우고 지금까지 몇통 왔어?





194

8통 정도네.





197

>>194

현재 진행형이었냐. www





199

메일 내용은,

[한번 더 만나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화를 내는 것 같진 않은데.




200

>>1에게 조금이지만 여유가 생긴 것 같네.
힘내라.




201

현재 진행혔이었나...
힘들겠구만.
그보다 기운을 낸 거 같아서 안심했어. www




206

사장님한테서 전화 왔다.





209

사장 [바보자식! 그 녀석이 루팡이다!!]





213

사모님이 나랑 만나고 싶은 거 같아.
사모님이라고 해도 나한테는 어머니같은 분이지만.





214

>>1은 정말 축복받은 환경에서 사는 걸.





216

사장님, 사모님, 나 이렇게 3명이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한 상담도 겸해서.

>>214

진짜 그렇게 생각해.
내 주위에는 온통 좋은 사람 뿐이고.





218

회사 후배가 메일을 보냈다.

[선배 빨리 복귀하세요. 미팅 약속 잡아두고 기다리겠습니다.]

이녀석...좋은 녀석이었구나...




219

몇년 전 TV에서 했던 외화 시리즈의 대사 중에

[단념해라, 넌 세계를 구할 수 없어.]

이런 게 있었어.
>>1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행동하면 돼.
그 이상을 넘어선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221

>>219

죄책감이라고 할까....동정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건 나도 알아.
일단 병원에 가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분명 무책임한 참견이란 것도 알지만....





223

이별을 두번이나 경험시키는 건 불쌍해.





224

>>1의 주위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 뿐이네.





231

만역 이 스레가 계속 남아 있다면....
사장님이랑 상담한 거 보고하도록 할까?
또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돌아올 생각인데.





233

물론.




237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계속 들러서 보고 해줘.
네가 없는 동안 스레 지키기는 내가 해둘께.





239

오늘 저녁 늦게 다시 돌아올꺼야.

지금까지 어울려 줘서 고마워!
그럼 밤에 보자!!!





256

잃은 물건이 있어서 잠시 집에 왔다.
아니 그것보다....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서.....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들어왔지만.....
지금부터 또 나가야 돼.





258

>>256

무슨 일이야?




259

설마 또 맞은 거야?




260

무슨 일인지 궁금한데.





268

갔다왔어.
잠시 진정할 겸 샤워 좀 하고 온다.




270

어서와.




271

기다렸어.




273

샤워 끝났다.
...그럼 뭐부터 이야기할까...





275

느려도 괜찮으니까 천천히 상세한 이야기를 해줘.




277

그럼 보고한다.
나도 여러가지로 혼란스러워서 뭐가 뭔지....
그래도 상황을 정리하고 싶으니까, 적어볼께.




278

우선 사장님 집에 갔다.

사모님이 집앞에 마중나와 계셨다.
만나자 마자 기운내라며 뜬금없이 격려 받았다.
조금 깜짝 놀랐지만 답례를 말한 뒤 집에 들어갔다.

거실에 가니 그녀의 부모님과 낯선 여자가 앉아 있었다.
거기서 난 굳어졌다.




281

낯선 여자는 그녀의 소꿉친구였다.

이전 그녀의 부모님 집을 방문했을 때 연락처를 교환했었는데,
그 뒤 부모님이 날 보고 싶다며 연락을 해온 듯 했다.
소꿉친구는 그녀랑 부모님 양쪽에게서 내 이야기를 듣고 따라 왔다.

사장님은 나한테 미리 이야기 했다면 오지 않았을 것 같아서
비밀로 했다고 말했다.
아니 그렇게 도망 먼저 생각하는 성격이 아니란 걸 아시면서. w




282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됐다.

우선 부모님이 나한테 사과했다
그 후 소꿉친구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나랑 그녀가 만난 날 그녀는 소꿉친구 집을 방문했던 것 같다
거기서 너무나 기쁜 표정으로

[오늘 정말 멋진 사람을 만났어.]

그렇게 떠들며 즐겁게 웃었다고 말했다.
나랑 만날 때마다 소꿉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고.
여러가지로 세세한 이야기도 한 듯 했다.







283

그때 그녀가 자신이 감정 조절을 못하는 것에 대해
소꿉친구에게 상담한 끝에 병원에 가보기로 했지만
그녀에겐 돈도 없는데다, 그녀의 부모님이 말렸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내가 그녀의 부모님에게 고함을 쳤다.

[어째서 병원에 가지 못하게 한겁니까!!]

부모님은 아무 말도 없었다.




284

난 진짜로 화가 났다.

[어째서냐고 묻고 있잖아요!!!]

그렇지만 부모님 아무 말도 없었다.




285

이 모습에 사장님도 화를 냈다.

[당신들 뭐하러 여기 온 겁니까! xx는 그런 짓을 당했는데도
 그쪽 딸을 걱정하고 있는데 친부모란 사람들이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그러자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부끄러웠습니다.....]




286

나 [부끄럽다는 건...병원에 가면 다른 사람들 눈에 흉이 될 거 같아서?]

부모 [예....]

정말 오랜만에 뚜껑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294

부모 [거기다 진료비도 비싸고.]

안된다, 이사람들. 이대로는 안된다.
그대로 침묵이 계속되었다.





298

소꿉친구가 우선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했다.

거기서 그녀의 과거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그녀가 지금껏 사귄 남자는 3명.
첫번째 애인과는 잘 사귀던 중,
남자가 전근을 가는 바람에 자연스레 깨지게 됐다고 했다.





300

두번째 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소꿉친구가 잠시 말을 끊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그녀는 두번째 애인에게서
습관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처음 그녀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소꿉친구가
헤어지라고 말했지만, 상냥할 때는 그녀에게 정말 잘해줬기에
쉽사리 헤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304

그러다 남자 친구에 의해 1주일 정도 방에 갇혀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그녀는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물론 소꿉친구는 범죄니까 경찰에 신고하자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또 다시 충격적인 사실이 또 하나 알게되었다.

무려 그녀의 부모님이 그걸 거절했다고 한다.
거기다 그녀가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명령까지 내렸다고.




305

....우와...이건 심한데...




307

결국 그녀의 정신적 이상은 전부 그녀의 부모님이 만들어낸 건가.





308

소꿉친구가 두번째 애인이랑 담판을 봐서
어떻게든 헤어지게 했지만, 결국 그녀는 집에 틀어박히게 됐어.




311

그 말을 듣고 충격 떄문에 한동안 말을 못했다.
그러다 간신히 그동안 신경 쓰였던 것을 물어보았다.

나 [그러니까 그녀만 숙부네 집에서 살고 있는 겁니까?
     일하지 않고 있는 것도 당신들 명령 때문인가요?]

부모 [그애는 우리 말을 듣지 않습니다. 집에 있으면 소리만 지르고...]

안된다. 이 사람들....진짜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다.





312

학창시절 괴롭힘을 당한 끝에,
상습 폭행에 감금으로
결국 감정 조절 능력을 상실한데다
부모님에겐 세상 사람들 보기 부끄럽다며 버려진 상태.
그녀가 너무 불쌍하다.





313

이쯤에서 집에 돌아왔어.
한번 머리를 차갑게 하고 싶어서.
그리고 다시 돌아가 이야기를 재개했다.





314

3명째 애인은 나렁 닮은 분위기를 가진 사람으로
그녀의 언동이 무서워서 바로 헤어졌다는 것 같다.
집주소도 모르고, 휴대폰 번호도 곧바로 바꿔버려서
결국 연락을 할 수 없게 됐다고.





316

그래서 자기를 버리고 가지 말라고 한 거구나...
하아...불쌍하게도....





317

자기 딸을 보고 부끄럽다니....
나라면 한바탕 날뛰었을 텐데.





319

뭐야, 이건
제 아무리 그녀가 자신을 개선하고 싶어도
이런 부모 밑에서라면 절대 무리다.





320

소꿉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거의 그녀는 매우 밝고 배려심이 많았다고 해.
소꿉친구가 초등학교때 전학 왔을 때도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됐다느 것 같다.
고등학교때 괴롭힘을 당한 이유도 친구를 감싼 것 때문이래.
그래도 소꿉친구 앞에서 웃음을 잊는 법이 없었다고 했어.





323

그 좋은 아가씨를 엉망으로 만든 게
그 부모인가...정말 망할 인간들이네.





326

그녀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정신이 이상해졌을 거야.





327

그 이야기를 듣자 너무나 분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친부모에게 이런 취급이나 당하고 있다 생각하니.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장님이 내 어깨를 도닥여 줬지만, 너무 분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울고 싶다.





330

그때 깨달았다.

[아, 나는 아직도 그녀를 좋아해.]

소꿉친구도 울면서 말했다.

[난 이제 참을 수가 없어요. 이런 부모 밑에서 그애가 고생하는걸.]

사모님도 울었다.
사장님이 큰소리로 화를 냈다.




339

사장님이 탁자를 쾅하고 내려쳤다.

사장님 [당신들! 여기 xx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나 알아?!
           이녀석은 말야,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는 괴로움을 당했어.
           하지만 여기 있는 안사람이랑 xx를 내 자식처럼 여기며
           사랑을 쏟아왔기에 엇나가는 법 없이 바르게 살아가고 있어.
           헌데 친부모란 사람들이 친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사장님, 감사합니다.
평생 잊지 않겠어요.




341

사장님이 너무 멋있어서 울었다.




342

사장님.....





343

난 남자지만...사장님에게라면...





346

사장님 말 생각했더니 또 눈물이 흘러. ww




347

힘내라!!!




348

기운내!!!





349

그리하여 우리가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도 좋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난 계속 울고 있었기 때문에, 전부 사장님이 해줬지만. w




357

....조금 눈앞이 흐린데....




358

그녀의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장님이 나한테,

[너는 바보다. 진짜 바보야. 네 아버지랑 똑같아. ww]

이렇게 말하셨다.




361

사장님 [각오는 되있냐? 힘들거야. 일도 확실히 부려먹을 거고.
           하지만 네 뒤에는 우리가 있다는 걸 잊지마.]

조금 미적지근 부분도 있었지만, 사장님 말에 결심이 섰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어설픈 동정심으로 보일지도 모르고,
엄청난 바보짓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녀를 구하고 싶다.




362

>>361

넌 진짜 좋은 놈이야....





363

우선 소꿉친구가 그녀한테 연락을 했다.
나에 대한 건 숨긴 채, 지금부터 만날 수 있겠냐고.
그래서 소꿉친구랑 그녀를 만나러 갔다.





364

넌 바보가 아냐.
적어도 우리는 너와 같은 마음이야.




365

그게 네가 결정한 일이라면...돌격해라!!




366

세상에 널 바보취급하는 녀석이 있다면 내가 쳐부셔줄께.




368

>>366

나도 힘을 보태주마!!




369

그녀는 굉장히 놀란 것 같았다.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결국 꼭 껴안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378

꼭 껴안은채 이전에 사겼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며 부모에 대한 이야기
아팠던 이야기, 괴로웠던 이야기를 거듭했다.
같이 병원에 가보잔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녀가 미안하다며, 고맙다며 웃었다.
그것은 갑자기 이상해진 그녀가 아닌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였다.





381

결국 꼭 껴안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넌 이미 천마디, 만마디의 이야기를 한 거야.





384

그동안 그녀가 내보였던 이상은 말끔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병원에 가서 상담이든 뭐든 할 수 있는 걸 해볼 생각이다.
이상 참견을 좋아하는 바보의 이야기였어.

모두들, 들어줘서 고마워.




387

사랑을 보여줘서 고마워요.




390

수고했어.
정말 수고했어.
눈물 때문에 모니터가 안보여.




392

난 이런 사랑을 해볼 수 있을까...




396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아라!!!




397

누구는 사랑이 없는 시대라고 말하지만....
난 감히 말하겠어.
사람은 역시 사랑을 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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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꼴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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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내가 학생 때 이야기다.
나는 조그만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 옆집에 일가족이 살고 있었다.
조그마한 방 하나에 와병 생활중인 어머니, 나이 많은 할머니, 여자 중학생 그녀 이렇게 세명.

그녀는 너무나도 작고 여위어서 평소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굉장히 밝고 활달한 성격 덕분일까, 어두운 내색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예의도 발라서 나를 보면 인사도 곧잘 했다.
그렇게 두어번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그녀와 친해졌다.

그녀는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할머니의 신변을 돌봤다.
수입이라곤 생활보호 대상자 지원금 밖에 없었기 때문에 가계 사정은 상당히 어려운 듯 했다.

일단 TV나 기본적인 가전 제품은 있는 것 같았지만, 냉난방을 위한 가전 제품은 없었다.
거기다 전화기도 없었다.
옷이라곤 교복 말고 단 두벌 뿐이라서, 평소에도 교복 치마를 입고 다녔다.

머리카락을 씻는데도 샴푸가 아니라 비누를 쓰는 것 같았다.
물론 머리카락은 집에서 잘랐다.
그녀의 가정 사정을 알게 되자 동정심이 생겼지만, 어떻게든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섯부르게 동정하는 건 상처만 줄 뿐이니까.

휴일에는 우리 집에 놀러오기도 했다.
숙제하는 걸 봐주거나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면 활짝 웃었고, 게임으로 완벽하게 눌러주면 살짝 화를 내기도 했다.
그녀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여자애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그녀가 문앞에 서있었다.

그녀 [며칠안에 꼭 돌려드릴 테니까, 천엔만 빌려 주세요.]


나는 그녀가 어째선지 우물쭈물 말을 흐리는 것이 이상해 이유를 물었다.

나 [왜? 무슨 일 있어?]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띄엄 띄엄 입을 열었다.

그녀 [...생리...가 시작 됐는데...생리대...없어서...에헤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나 자신을 후려 패주고 싶었다.






51

그녀는 천엔만 빌려달라고 했지만, 굳이 천엔권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5천엔을 손에 쥐어주었다.
저녁 8시 쯤 됐을까, 그녀가 우리 집에 왔다.

그녀 [나머지는 며칠 안에 꼭 갚겠습니다.]

그녀는 거스름돈 4천엔을 돌려주려 왔다.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굳은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나 할머니에겐 비밀로 해달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어머니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다음날, 컨디션이 괜찮았던지 혼자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온 그녀의 어머니를 만났다.

그녀의 어머니 [...신세를 졌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그 분은 몇번이나, 몇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나같이 어린 녀석한테 말야.

나 [저도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는 걸요. 유념치 마세요.]

실제 쓰레기 분리 수거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관공서, 은행, 슈퍼마켓 위치를 알려주기도 했다.
아는 사람이나 친구가 한명도 안 사는 곳인지라 상당히 도움이 됐다.
나는 허둥지둥 그런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내 말에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어머니 [딸아이랑 놀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 교복 차림의 그녀가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녀는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녀 [안녕하세요!]

평소처럼 활발하고 건강해보였다.

나 [오늘은 빨리 나가네?]

그녀 [오늘 당번이거든요.]

짦은 대화를 나눈 뒤 그녀를 배웅했다.

그녀의 어머니 [...저 아이, 요즘 웃는 얼굴을 자주 보이게 됐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다시금 나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정말 기쁜듯이 말했다.

빌려 줬던 돈은 그녀가 말한 그 날 돌려받았다.

그녀 [에헤헤,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그녀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웃었다.






59

그 날 이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되었다.

나 [학교에서 친구 많이 사겼어?]

그녀 [에헤헤...그게, 친한 애가 별로 없어요.]

내 조심성 없는 질문에 그녀는 별 것 아닌 듯이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실수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쓰렸다.

그녀가 지금 사는 곳에 이사온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때.
반 애들이랑 친해 지기도 전에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를 다니던 중 학기 초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는 바람에 한동안 학교를 쉬게 되었다.
그렇게 친구를 사귈 타이밍을 완전히 벗어나는 바람에 반에서 고립되었다고 한다.

그 말에 나는 한층 더 가슴이 찢어졌다.

아마 나한테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 것도 학교에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집안 일을 했다.
그리고 조금 한가해지면 우리 집에 왔다.

나는 책이라면 장르를 따지지 않고 읽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가진 책 중 특히 소설책을 자주 읽었다.
빌려 줄 테니까 집에 가져가서 여유 있게 읽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책을 더럽힐 수도 있다면서 굳이 내방에서 책을 읽었다.

음료수나 과자를 주려고 해도, 캔음료나 커다란 봉지 과자는 사양하곤 했다.
음료수는 뚜껑을 연 것, 과자는 이미 개봉된 것만 먹었다.
그 마저도 네가 안 먹으면 버릴 수밖에 없다면서 억지로 먹인 것이다.

그리고 나서 과자나 음료수를 먹은 이야기를 할머니나 어머니한테 꼭 보고 하기 때문에
다음에 그 분들을 뵐 때마다 인사를 듣곤 했다.

답례로 그녀의 어머니한테 음식을 대접받기도 했다.
태국쌀로 만든 볶음밥이 특히 맛있었다.
뭔가 특별한 비법 소스라도 쓴 건가 싶어서 물어봤지만 특별한 재료는 없었다.
태국쌀을 사와서 볶음밥을 만들어 봤지만, 어떻게도 그 맛을 재현하지 못했다.
그걸 그녀의 어머니한테 말하니,

그녀의 어머니 [그러면 제가 만들어 드릴테니 저희 집에 와서 드시고 가세요.]

미안하다고 생각했지만 워낙 맛있어서 몇 번이나 신세를 지곤 했다.






77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조금 건강해 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랑 그녀가 각각 학교에 가 있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가 쓰려졌다.

내 연락처를 기억하고 있던 할머니가 나한테 연락을 준 덕분에 바로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머리속이 새하얗게 변해 허둥지둥 대는 바람에 구급차를 부르는 게 늦었다면서.
울면서 미안하다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에게 사과를 반복했다.

다발성 장기 부전.

환자 상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분명 징후가 있었을 텐데 왜 방치했냐.

의사가 그렇게 소리쳤다.
나는 울컥 해서 의사의 멱살 부여 잡고 욕설을 퍼부을 뻔 했다.

그녀 [죄송합니다.]

조용한 목소리로 사죄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바로 입원 시키고 집중 치료실에 들어가야 된다고 말했다.
나는 머릿속이 엉망진창 뒤섞여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도저히 내 손으론 감당이 되질 않아서 우리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다.

아버지 [지금 당장 가마.]

사정을 들은 아버지는 딱 한마디만 하고 바로 달려와줬다.
아버지는 평일인데도 조퇴를 해서 1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아버지랑 그녀의 어머니는 내가 아파트에 입주할 때 인사만 나눈 사이였다.

아버지 [네가 그간 신세를 진 분이다. 그럼 나도 신세를 진 거나 마찬가지야.]

아버지는 아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녀의 어머니랑 대화를 나눈 뒤. 굳은 표정으로 병실을 나섰다.
할머니가 이래 저래 한계 상황인지라 아버지가 집에 바래다 주기로 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병원에 남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를 혼자 둘 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약기운 때문인지 금새 잠들었다.
우리 둘은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가만히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 보는 사이 나는 필사적으로 울고 싶은 걸 참았다.
그녀가 울지 않는데 내가 우는 건 이상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참아낼 수 있었다.







78

그녀의 어머니는 입원하고 3일 뒤 죽었다.
마치 잠들 듯이 고요하게.

향년 34세.

나이를 알고 나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나 젊었던 걸까.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았다.

장례식 준비나 관공서에 제출할 서류 준비 같은 걸 해야 되지만
할머니는 아직도 혼란에 빠져 있었고, 나와 그녀는 그런 걸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결국 또 아버지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달려와주셨다.
내가 울상이 되서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따귀를 얻어 맞았다.

아버지 [너, 그 아이 앞에선 그딴 얼간이 같은 얼굴 하지 마라.]

아버지는 여러가지 일을 처리해주셨다.
금새 장례식 준비를 마치고 장례를 시작했다.
도저히 현실이라 느껴지지 않는데 상황만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화장하는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빨개진 눈매를 숨기지 않은 채 서있었다.
그녀는 울지 않았지만 무표정했다.

대신 내 손을 아플 정도로 꽉 잡고 있었다.

나는 가끔 그녀의 안색을 살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나서 아버지의 차를 타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일이 있다며 곧장 돌아가셨다.

나는 내 방에 혼자 주저 앉아 멍하니 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밤중에 그녀가 내 방에 찾아 왔다.
그녀는 활짝 웃으려 했지만 내가 보기엔 어떻게 봐도 힘들어 보였다.

그녀 [에헤헤...어머니...앞에서는 웃으려고...울면 안돼는데...]

그녀는 결국 웃는 얼굴로 눈물을 쏟았다.

그녀 [오빠...라면 용서해...줄 거라고...]

간신히 울었다. 이제야 간신히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나도 울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그녀를 껴안고 함께 울었다.
정말 한심한 일이지만 그것밖에 해줄 게 없었다.







82

그 날 이후 그녀는 나를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성에 씨 라는 존칭을 꼬박 꼬박 붙여서 불렀는데.

나는 형제가 없는지라 여자애한테 오빠라는 소리를 들으니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만 두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녀가 슬픈 표정을 짓는지라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할머니는 장레식 이후 부지런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헌데 다른 사람의 도움은 일절 거절했다.

집안 일이나 부업 일에 그녀나 내가 손을 대면 불 같이 화를 냈다.
마치 우리에게 약점을 내비치고 싶지 않다는 것 처럼.
지금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으로 슬픔을 잊으려 한 것이라 생각된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틀어 박혀 있으면 언제나 그녀가 찾아 왔다.
이야기는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예전과 하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어느 순간 부턴가 나와 그녀의 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와 내가 묘하게 가까워서 당황한 적도 많다.
간혹 내 팔이나 옷을 잡거나 품에 안기는 등 응석을 부리는 때도 있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고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가 갑자기 내 무릎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 놀랐던 건 그녀가 너무나 가벼웠다는 점이다.
나한테 등을 맡긴 채 앉아 있던 그녀가 툭 하니 말을 건냈다.

그녀 [...아버지 같네요...]

나 [그거 무슨 의미야?]

그녀는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침묵하다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녀 [아버지가 있으면...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어서. 에헤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나는 그녀를 꼭 끌어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95

여름 방학에 접어 들고 나서 나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녀는 할머니의 허락을 받아 부업 심부름을 했다.

친구나 어머니가 고향에 들렀다가 가라며 연락을 보냈지만 결국 가지 않았다.
그녀와 할머니랑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한참 더운 여름 날. 그녀의 어머니 49재날이 되었다.
유골은 아파트에서 자동차로 몇시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절 묘지에 납골하기로 했다.

묘지에 갈 때 또 다시 아버지 신세를 지게 되었다.
나랑 그녀, 할머니는 아버지 차에 타고 절에 갔다.
절에 도착해 그녀의 어머니를 그녀의 아버지 옆에 안치했다.

그녀 [어머니, 이제 외롭지 않을 거에요.]

그녀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염불소리가 울려 퍼지는 중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하지만 장례식 때 처럼 세게 잡진 않았다.
묘를 보니까 그제서야 이것이 현실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집에 데려다 준 뒤 바로 돌아갔다.
내가 방에 돌아와 쉬고 있던 중 그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방에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고 큰절을 했다.

그녀 [여러가지로 정말 감사합니다.]

나 [...여러가지라니...전부 아버지가 다 해줬는걸.]

무심코 그런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말실수 했다는 걸 깨닫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허둥대며 말했다.

그녀 [어, 어. 그러면, 저기, 어라? 계속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

다시 말을 꺼냈지만 조금 움츠러 드는 내색이었다.

그녀 [할머니 앞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울지 못했어요.]
그녀 [하지만 오빠가 옆에 있어줘서 힘낼 수 있었어요. 에헤헤, 응석 부린 것도 있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굉장히 쑥쓰러운 것 같았다.
잠시 빨간 얼굴로 나를 힐끔 힐끔 쳐다보던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 [...또... 응석 부려도 될까요?]

나는 즉답했다.

나 [당연히 되지. 얼마든지 응석부려도 돼.]

그녀 [진짜...루요?]

나 [그럼.]

그녀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그녀는 오랫만에 정말 해맑게 웃었다.
이 아이가 웃을 수 있다면 뭐든 해주고 싶다.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127

그녀는 어머니가 없는 생활에도 점차 익숙해진 듯 보였다.
덕분에 그녀가 우울한 표정을 짓는 일도 줄어 들었다.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 그렇게 다시금 일상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생활 보호 대상자로 지정된 만큼 할머니의 부업으론 수입을 확 늘리거나 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녀와 할머니에게 있어선 상당히 큰 액수였다.
덕분에 생활비 만큼은 빠듯이 어떻게든 충당할 수 있었다.

그 해 처음으로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기 시작할 쯤이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 난방기구가 없다는 걸 생각해냈다.
학교에서 돌아와 곧바로 그녀의 집에 가니 할머니가 부업을 하고 있었다.
얇은 옷을 몇겹으로 겹쳐 입은 듯 했지만 천이 얇아 추워 보였다,

할머니는 익숙해졌다고 말하셨지만 나는 바로 집에 가서 이제 입지 않는 두꺼운 옷을 가져다 드렸다.
준다고 하면 분명 거절하실 테니까 빌려드리겠다고 하며 억지로 손에 안겨 드렸다.
할머니는 작게 웃으면서 받아 주셨다.
하지만 곧,

할머니 [그 아이가 샘을 낼 것 같은데.]

그렇게 걱정하셨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학교에서 돌아온 그녀는 평소처럼 내 방에 놀러왔다.
그녀는 곧바로 내 옆에 앉더니 조용히 내 얼굴만 쳐다봤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던 그녀는 내 팔을 잡고 말했다.

그녀 [저한테는 옷 안 빌려주실 건가요?]

그녀는 입을 비쭉 내민 채 그렇게 말했다.
평소와는 달리 묘하게 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나 [어떤 거 빌려줄까?]

그녀 [이거]

그녀는 내가 입고 있던 스웨터를 가리켰다.

나 [이거?]

그녀 [응.]

나 [이거면 돼?]

그녀 [그거면 돼요.]

나 [오늘 씻어서 내일 빌려줄께.]

그녀 [지금 바로.]

그녀는 아이가 칭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못이기는 척 결국 스웨터를 벗어서 그녀에게 건네줬다.
오래 입어서 후줄근 한데다, 내 몸에도 제법 큰 스웨터였다.

몸집이 작은 그녀가 입자 마치 원피스처럼 보일 정도였다.
일어서니 옷자락이 무릎까지 내려왔다.
그녀 바닥에 앉아 스웨터 옷자락으로 다리를 푹 가린 채 말했다.

그녀 [에헤헤, 역시.]

나 [응?]

그녀 [따뜻해요.]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녀가 웃을 때마다 나 역시 기뻐진다는 걸 깨달았다.






131

그녀 [겨울 방학에는 고향에 갈 건 가요?]

12월에 들어서고 얼마 뒤 그녀는 나한테 그렇게 물었다.

나 [아니. 그냥 아르바이트 할 거야.]

나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결국 연말임에도 집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내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다.
대신 떡이나 명절 음식, 전골 요리 재료를 잔뜩 보내주셨다.
나눠 먹으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그녀와 함께 전골요리를 할 때 쓸 냄비랑 가스 버너를 사러 함께 마트에 갔다.
거기서 같은 과 여자 친구랑 우연히 만났다.

친구 [어서오세요. 어라? xx 잖아.]

나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구나.]

친구 [응. 그런데... 뭐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해.]

내 옆에 서있던 그녀를 슬며시 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귀찮아 질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내색하진 않고 그대로 냄비랑 가스 버너를 사서 돌아왔다.
그 날 저녁은 그녀랑 할머니와 같이 전골 요리를 해먹었다.

몸이 뜨거워질 정도로 따뜻한 전골 요리에 그녀와 할머니는 크게 기뻐했다.
그릇을 정리하기 위해 할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스웨터를 입은 그녀가 내 옆에 앉았다.
묘하게 나한테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향기가 코끝을 맴돈다.

그녀 [저기...오늘 만난 그 사람은...]

나 [학교 친구야.]

그녀 [단순한 친구?]

나 [단순한 친구.]

그녀 [그러면 자세한 이야기라는 건 뭔가요?]

나 [너랑 내 관계를 묻고 싶은 걸 테지.]

그녀 [저, 저 말인가요?]

나 [흐음, 설명하기 어려울 거 같은데.]

그녀 [그렇네요.]

나 [뭐라고 말해두지.]

그녀 [애인...은 안되나요?]

시선을 돌리니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 [그렇게 말해도 될까?]

애써 냉정하게 말했다.

그녀 [어? 그렇게 말하실 건가요?]

그녀는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나 [응, 그렇게 말하려구.]

그녀 [그, 그런가요. 으, 응. 그렇지요?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갑작스레 이런 상황이 된지라 그녀는 물론 나도 당황했다.
그녀는 꽤 흥분했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두서 없이 말을 꺼냈다.

그녀 [아, 하지만. 저기, 그게. 애인 같은 행동 한번도 안했는데. 괜찮나요?]

나 [애인 같은 행동은 뭐야?]

내 질문에 그녀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그리고는 얼굴을 가린 채 돌아 앉았다.

그녀 [할머니한테는 비밀이에요.]

나 [비밀이네.]

그녀 [절대로...알았죠?]

나 [알았어.]

결국 그 날은 상대 얼굴이 더 빨갛다며 서로를 조롱하느라 귀가가 늦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정말 한가한 녀석들.
내가 그냥 애인이라고 말하니 너무 당당해서 재미없다며 투덜거렸다.
나는 네 녀석들 장난감이 아니야.






133

그렇게 나는 그녀와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이가 특별히 달라지거나 하진 않았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며 같은 시간을 보낸다.
이전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숙제를 가져오면 함께 봐주기도 했다.
나는 형제가 없기 때문에 그런 일 하나 하나가 신선하고 즐거웠다.

하루 하루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중 크리스마스날이 가까이 다가 왔다. 
여름철, 그녀의 생일날 선물을 못 줬던 것이 생각난지라 이번엔 꼭 선물을 하고 싶었다.

할머니에게 그녀가 갖고 싶어하는 게 뭐 없을까 물어보니 옷가지를 갖고 싶어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옷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말을 하니 할머니가 너무 미안하다면서
그렇게까지 도움을 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빙긋 웃으면서,

나 [괜찮아요. 크리스마스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무슨 의미로 저런 소리를 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여자 옷가게에 남자가 혼자 들어가려니 여러가지 의미로 고역이었다.
결국 같은 과 여자애들한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애들한테 사정을 설명하면서 당황하는 바람에 할말 안할말 마구 늘어 놓은 결과.
평소 무뚝뚝해보인다거나 어른스러워 보인다는 평가를 받던 내 케릭터가 완전 붕괴했다.

결국 여자애들의 도움을 받아 가볍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옷 몇가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152

선물 포장을 한 뒤 옷을 벽장에 숨겨두었다.
그녀가 벽장을 열거나 하는 일을 없었지만 근처에 갈 때마다 전전긍긍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할머니가 케이크를 사와 셋이서 함께 나눠 먹었다.

타이밍같은 걸 생각하는 게 귀찮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건네줬다.

그녀 [받아도 괜찮습니까?]

나 [응.]

그녀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시원스럽게 받아들였다.
내 방에 돌아와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그녀가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흩날리는 눈송이 사이로 상기된 표정의 그녀가 서있었다.
그녀는 내가 선물한 옷을 입고 있었다.

키는 대충 맞았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아 조금 헐렁했다.
하지만 그게 이상하게 귀여워 보여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머리카락 위에 올라탄 눈을 털어내며 말했다.

그녀 [정말 마음에 들어요.]

나는 그 말에 정말 기뻤다.
그녀는 방에 들어와 코트를 벗고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쑥쓰러운 듯 그녀는 이곳 저곳 옷 매무새를 어루만졌다.

나 [왜 그래?]

그녀 [이런 거, 처음이라, 뭐라고 해야 될지, 그게.]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이었다.

그녀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낸 거, 오랜만이라.]

점차 그녀의 목소리가 습기로 번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나 [울지마.]

하지만 어느 샌가 그녀의 눈매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그것을 엄지로 닦아내며,

나 [우는 것 금지.]

그녀 [기뻐서 우는 걸요.]

나 [그래도 금지.]

그녀 [...예.]

그렇게 계속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중, 그녀가 나한테 달려들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쓰러질 듯 휘청댔지만 어떻게든 받아낼 수 있었다.

그녀 [에헤헤, 조금만 더.]

그녀가 날 꼭 껴안은 채 떨어지질 않아서 조금 당황했던 건 비밀.
나중에 할머니한테도 블라우스와 무릎 담요를 선물해드렸다.
자기 선물도 있다는 걸 모르셨던 지라 깜짝 놀라셨지만, 이내 기뻐하셨다.






153

나는 연초부터 정말 필사적이었다.
현장 실습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나는 간호 복지과 전공이었기 때문에 자원 봉사 겸 현장 실습을 하지 않으면 학점을 얻을 수 없었다.
1월 중순부터 2주일에 걸친 현장 실습 그리고 2월 초순 부터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에서 모르는 것 투성이였고, 시험공부도 잘 되지 않았다.
내가 현장 실습을 한 곳은 정신과 전문 병원이었다.
격리 병동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낄 만한 일도 몇 번 마주쳤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니까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에 귀가할 때까진 어떻게든 표정을 정돈하곤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방문했다.
그리고 한마디,

그녀 [수고하셨어요.]

이 한마디에 모든 노고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실습 기록을 정리하는 사이 그녀는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대개의 경우 벽에 기대 앉아 소설을 읽곤 했다.

내가 그녀쪽을 쳐다볼 때마다 시선이 마주쳤다.
아마도 내 안색을 살피고 있었던 것 같다.
실습 기록 정리와 시험 공부를 마치고 나면 그제서야 내 곁에 와 앉았다.

이야기를 나누거나 TV를 보거나 혹은 서로 몸은 기댄 채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녀와 함께 하는 이 평범한 일상은 나에게 있어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녀가 내 옆에 있어준 덕분에 괴로운 실습과 시험 공부를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었다.
실습 성적과 시험 성적, 둘 다 나름 괜찮은 결과를 냈다.

결과를 알고 나서 간신히 끝났다는 생각에 한숨과 함께 몸에서 맥이 쭉 빠져 나갔다.
그때 내가 얼마나 맥이 빠져보였는지 그녀가 불안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일단 괜찮다면서 그녀를 위로했지만, 결국 쓸데없는 걱정을 끼쳤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큰 고비가 무사히 지나가고 평소와 같은 생활이 지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평소라면 저녁 10시쯤 해서 귀가했다.

헌데 그 날은 늦은 시간임에도 독서를 계속 하고 있었다.
조금 졸려 보였지만 책을 읽으면서 힐끔 힐끔 시계를 확인하곤 했다.
그러다 12시 정각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응? 이제 가게?]

그녀 [아뇨, 아직.]

그녀는 벽걸이에 걸어뒀던 코트에서 뭔가를 꺼내오더니 나한테 내밀었다.

그녀 [이거요.]

나 [이게 뭔데?]

그녀 [초콜렛.]

나 [뭐?]

그녀 [14일 됐으니까요.]

나 [어?! 진짜?]

나는 아직도 얼떨떨한 상태였다.
그녀에게서 푸른 포장지로 랩핑된 작은 상자를 건네 받았지만 실감이 안났다.
그러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고서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 수 있었다.

나 [2월 14일.]

그녀 [예.]

간신히 이해했다.
하지만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상쾌감도 잠시, 내 손에 들린 상자의 의미를 깨닫고 한층 놀랐다.

그녀 [이제...애인인 걸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살풋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녀 [이걸로 제가 제일 처음이에요.]

나 [제일 처음?]

그녀 [오빠라면 다른 사람한테 또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나 [다른 사람한테 초콜렛 받을 일 없으니까, 내일 줘도 되는데.]

그녀 [그래도, 혹시나 다른 사람보다 늦게 주면, 왠지 싫어서. 에헤헤.]

그녀는 손가락으로 뺨을 긁으며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나 [화이트 데이때 확실히 답례할께.]

그녀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그대신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나 [뭔데?]

그녀 [대답해주실 수 있나요?]

나 [그러니까, 뭘?]

그녀 [대답해주신다고 하면 말할거에요.]

나 [좋아, 대답할께.]

그녀 [그럼, 묻겠습니다.]

그녀는 몇번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 [당신은 저를 좋아하나요?]

내가 할 말은 하나 뿐이었다.

나 [응, 좋아해. 넌 나에게 있어 이 세상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야.]

간신히 말할 수 있었다.
그녀랑 사귀고 나서도 부끄러워 차마 하지 못했던 말.
언제나 마음속 깊이 품고 있었던 말.
그 짦은 말을 하는데 얼마나 긴장했던지 목이 바짝 마르고 어느새 꽉 쥐고 손아귀에 땀이 흔건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보다 살며시 내 품안에 들어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와 그녀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상대를 껴안고 있었다.
그러다 새벽녘에 그녀를 집까지 보냈다.

방에 돌아와 초콜렛이 담긴 상자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도저히 포장을 열 수가 없었다.
결국 상자를 냉장고 깊은 곳에 넣어두기로 했다.

생전 처음 연인에게 초콜렛한테 받았다는 사실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갔지만 같은 과 여자애들은 나한테 애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초콜렛을 주거나 하진 않았다.







167

그 때 받은 초콜렛은 먹기 아까웠기 때문에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보관해뒀다.
냉장고 안 한 가운데 마치 부처님상을 모셔둔 것 마냥 소중히 보관해뒀는데,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돌아온 그녀가 그걸 발견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화를 냈다. 그녀가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눈물까지 글썽일 정도였다.
나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초콜렛을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그래도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내 말에 대꾸하기는 커녕 시선도 주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녀의 기분을 풀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
그 덕분에 그녀가 귀가할 시간이 됐을 쯤,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 [진짜 뭐든지 할 테니까 용서해 줘.]

그녀 [...뭐든지요?]

나 [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할께.]

그녀 [진짜루요?]

나 [할께. 꼭 할께.]

그녀 [그러면 또 한번 물을 테니까 대답해주세요.]

나 [뭐?]

그녀 [정말로 저를 좋아하나요?]

아직도 화가 덜 풀렸는지 그녀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 표정에 조금 주춤했지만, 의지를 담아 말했다.

나 [좋아해. 정말로.]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간신히 굳은 표정을 풀었다.

그녀 [에헤헤, 안심했어요.]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내가 정말 나쁜 놈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녀 [이제 용서했어요.]

그녀는 눈앞에 와서 내 손을 잡았다.

그녀 [다음에 또 물어볼 거에요.]

나 [응?]

그녀 [몇번 들어도 기쁘니까요.]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재차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바보짓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녀는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화이트 데이 날 쿠키를 선물했다.

그녀 [내가 이거 안 먹고 장식해두면 오빠 화낼거지요?]

나 [뭐든지 한다고 맹세할 때까지 용서 안 할 거야.]

그녀 [에헤헤, 그거 무섭네요.]

뭐가 무서운지 물어보니 그녀는 볼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결국 무서운 게 뭔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199

2학년이 된 그녀는 매일 할머니랑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는, 고등학교 정도는 졸업해야 나중에 일자리 잡기 쉽다며 진학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녀는 의무 교육인 중학교만 졸업하면 일자리를 얻을 거라고 말했다.
결국 자기 대신 설득해 달라며 할머니가 나한테 부탁했다.

내가 말하는 거라면 들어줄 지도 모른단 생각에 나는 그 부탁을 가볍게 승낙했다.
그녀와 단둘이 있을 때 은근히 여러가지 이야기를 털어놨다.
하지만 그녀는 내 제안을 완고하게 거절했다.

고등학교를 나오는 게 보통.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입밖으로 내놓진 않았지만, 그녀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다.

굳이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던가, 좀 더 확실히 생각하고 나서 정하는 게 좋다던가.
내가 그런 주제 넘은 말을 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물론 그 이외에도 거슬렸던 게 있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방아쇠는 내 무신경한 한마디였다.

나 [왜 그렇게 빨리 일을 하고 싶어하는 거야?]






202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녀 [...돈이...없으니까요.]

아무 억양도 없었지만 너무나 차갑고 바늘로 찌르듯 매서운 말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말문이 막혀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다만 시간만 흘러갔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녀가 방문을 나섰지만 나는 그녀를 잡지 못했다.

이후 나는 할머니한테 가서 결국 도움이 못됐다고 사과했다.
내가 그녀에게 들은 말을 할머니에게 해드리니 아무 말 없이 소매로 눈물만 훔치셨다.

결국 그녀가 후일 다시 마음을 바꿀 지도 모르기 때문에 진학에 대한 건 재고해두기로 했다.
아무 힘도 없는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애인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들떠있던 게 한심스러웠다.

그녀는 이후에도 매일 내 방에 찾아왔지만, 대화를 나누지 않고 시간만 때우다 가는 일이 잦았다.
예전이라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그저 같이 있기만 해도 좋았지만, 지금은 둘 다 괴로웠다.

그러길 며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해맑은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나 힘든데 어찌 저리도 해맑게 웃을 수 있는 걸까.
다시금 그녀가 참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녀를 위해 애써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그 이후로 우리 사이에 내려 앉았던 무게감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았다.






203

애써 눈을 돌리려 해도 집안 사정은 그녀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래 저래 다감한 시기에 그녀에게 있어 집안 사정은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에게 있어서 타인이었다.
그런 타인이 자신의 치부 깊숙이 관여 하려 드는 건 아무래도 싫었을 테지.
이후로 그녀는 그 화제에 대해선 명확하게 선을 긋고 더 이상 입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지만 나 역시 아르바이트와 부모님의 송금으로 근근히 연명하는 처지였다.

일단 자격증을 따자.
그리고 졸업한 뒤 취직하자.

나는 생각하는 건 접어두고 우선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취직을 한다고 뭔가 특별이 바뀌는 건 없었지만, 우선 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현실 도피를 하고 싶었던 거라 생각된다.

보름 정도 지나자 그녀와 나는 예전처럼 친근한 사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단 표면적으론 그렇게 느껴졌다.

내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언제나 내 옆에 와 앉았다.
여러가지 이야기도 나눴다.

그녀는 내 말에 웃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
간혹 응석을 부리고 싶은 건지 가벼운 장난을 걸어오기도 했다.

내가 그걸 받아 주지 않으면 토라져서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용서를 받기 위해 온갖 변명을 늘어 놓곤 했다.

하지만 그 행위들 조차도 단순한 구실,
1시간이라도 더 함께 있고, 더 응석 부리고, 더 온기를 나누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다.

학교, 실습, 아르바이트.
언제나 동일한 사이클로 흘러가는 시간이었지만 그녀와 함께 해서 행복했다.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이 그녀의 생일이 다가왔다.
그녀의 생일날 뭘 해줄까 고민하는 중 그녀가 말했다.

그녀 [부탁할 게 있어요.]

그녀가 나한테 부탁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드문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무슨 일인데?]

그녀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나 [어딘데?]

그녀 [어머니가 있는 곳이요.]

기일에 가고 싶지만 할머니가 자신이 가면 분명 울거라면서 가길 꺼려한다고 했다.
일단 전철비는 받았지만 혼자 가는 게 불안해서 같이 가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르바이트 쉬는 날을 택해 그녀와 함께 성묘를 하기로 했다.







204

6월 중순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씻었다.
평소보다 더 깨끗이 해야 된다는 생각에 온몸 구석 구석 씻었다.

약속 시간, 그녀가 내 방을 방문 했다.
어째서일까, 그녀가 평소보다 작아 보였다.
평소에는 묶고 다니는 머리카락도 푼 상태였다.
어깻죽지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
그 탓도 있어서인지 그녀는 평소보다 더 어려보였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출발했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그녀는 조금 멀미를 했다.
그래서 나는 가는 동안 잠이나 자두라고 말했다.
실제 머릿속이 복잡할 테니까, 그 이상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전철을 타고 가다 기차로 갈아탔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대략 2시간 반 정도 시간이 지났다.

가는 동안 창밖 경치가 어느새 산골로 변해 있어서 놀랐다.
이전에 갔을 때는 자동차를 타고 간데다 경치를 볼 여유도 없어 이렇게 외진 곳이라고 생각 못했다.

경관은 확실히 좋았지만 민가는 선로 옆으로 드물게 보였다.
우리가 내린 역 또한 무인 역이었다.
역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지만, 버스 운행은 하루에 불과 4번 밖에 없었다.

지나 다니는 사람은 우리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이래서야 혼자 오는 게 불안한 것도 이해 된다.

절까지 가는 길은 그녀가 기억하고 있었다.
이내 절에 도착해 절 뒤편 묘지에 갔다.

나는 묘 앞에서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그녀 뒤에 서있었다.
그녀는 묘비에 물을 뿌리고 꽃을 두었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묘비를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그러던 중 그녀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 [돌아가요.]

나 [응? 벌써 가게?]

그녀 [울 것 같아서요.]

나 [울어도 괜찮아.]

그녀 [안돼요.]

내가 다시 말을 걸기 전에 그녀는 발을 돌려 나갔다.
역으로 가는 도중 그녀는 몇 번이나 발을 멈췄지만 등을 돌리진 않았다.

우리가 타고 갈 기차가 올 때까진 1시간이나 남았다.
무인 역에는 지붕이 있긴 했지만 그 아래 있기에는 너무 더웠다.
그래서 더위도 피하고 시간도 때울 겸해서 시원한 곳을 찾아 산책을 하기로 했다.

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걷다 벤치를 발견했다.
그곳에 앉아 잠시 쉬는데 그녀가 갑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207

그녀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어머니가 묻힌 마을이 자신과 어머니, 할머니가 원래 살던 마을이었다는 것.
그녀의 할아버지도 젊은 나이에 죽어 할머니 혼자 힘으로 자식이 키웠다는 것.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이웃에 살던 사이로 각각 21살, 17살에 결혼했다는 것.
어머니가 20살때 그녀가 태어났다는 것.
그녀의 이름을 아버지가 지어줬다는 것.

아버지가 운송업을 했었다는 것.
27살 때 사고로 죽었다는 것.
차량 할부금이나 어음을 감당하지 못해 자기파산했다는 것.
그리고 가족 세명이서 마을을 떠났다는 것.
아버지가 죽은 뒤 아버지쪽 친척들과는 연락이 끊겼다는 것.

어머니가 건강했을 때는 비정규직으로 공장에서 일했다는 것.
공장 기숙사에서 어머니, 할머니, 자신 이렇게 셋이서 살았다는 것.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이사를 했다는 것.
어머니가 쓰러지는 바람에 더이상 공장 기숙사에서 살 수 없게 됐다는 것.
그리고 이사한 곳이 지금 사는 마을이라는 것.

아파트를 빌리고 나서 어머니가 저금해둔 돈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
할머니도 일을 했지만 결국 건강을 해쳐 일을 그만 두게 됐다는 것.
저금 해둔 돈도 바닥나 결국 생활 보호를 받게 됐고, 지금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것.
복지과 사람이 노력해준 덕분에 지금 아파트에 보증금 없이 들어 올 수 있었다는 것.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어머니는 끝내 병원에 가지 않으려 했다는 것.

누군가 그녀를 일시적으로 보육 시설에 맡기자고 했지만 어머니가 거절했다는 것.
어머니가 가끔 앨범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해줬다는 것.
그 때의 어머니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는 것.
어머니가 늘 정말 즐거운 추억이 많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것.
그러면서 자신을 꼭 껴안아 줬던 것.
어머니랑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눴을 때, 나한테 꼭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했던 것.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이야기를 조금씩 정리해서 들려주었다.
어째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일까.
나는 어떤 얼굴로 이야기를 들으면 되지?

여러가지 심정이 섞여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211

그러다 이야기가 멈췄다.

그녀 [전...어머니가 부러웠어요.]
그녀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즐거웠던 기억이 없으니까요.]

그녀 [세상에 정말 즐거운 일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건지 믿을 수 없었어요.]

나는 무심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내 손을 가볍게 마주 잡았다.

그녀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 즐거운 일이라는 게 있었어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비추어진 웃는 얼굴이, 눈부셔서.

그녀 [상냥하게 대해줘서 기뻤어요. 처음이라.]

나 [...처음?]

그녀 [다른 사람들은 전부 저를 엄마의 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다시 표정이 흐려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확실히 미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속셈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집안 사정을 알게 되면 친철한 사람처럼 다가와서 돈으로 유혹하려 든 경우도 있다고.

그녀에 한테도 과자를 사주거나 용돈을 주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교제를 거절하면 그 이후부턴 찾아 오지도 않았고, 심지어 화를 내거나 일자리에서 쫓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일이 몇번이나 반복되자 그녀는 어른 남성에게 혐오감을 갖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때 상냥했던 선생님도 어머니 앞에선 이상하게 느물거리며 웃었다.
그 이상한 느낌이 싫어서 그때부터 남성이 다가오는 것 자체를 경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그런 경계심을 느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게 이상해서 이유를 물어봤다.
그녀는 내 말에 방긋이 웃었다.

그녀 [계속 지켜봤지만, 오빠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거든요.]

나 [그래?]

그녀가 날 믿어준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부끄러웠다.

그녀 [저기, 오빠는 왜 그렇게 상냥한 거죠?]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다.

그녀 [어째서죠?]
그녀 [네?]
그녀 [어째서 그렇게 잘해주는 거에요?]
그녀 [말해줘요.]

점차 그녀의 목소리에 물기가 섞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팔을 쥐며 어째서 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그동안 돌리고 있던 시선을 그녀에게 맞추며 그녀의 어깨를 마주 잡았다.

나 [너를 사랑하니까.]

그녀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다 내 목을 끌어 안았다.






217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판기를 찾았기에 음료수를 사 마시기로 했다.
한심하게도 돈이 모자라서 음료수를 하나만 뽑았다.

그녀 [절반만 주세요.]

그녀는 우선 내가 먼저 마시게 한 뒤 남은 반절을 마셨다.

그녀 [에헤헤, 간접 키스네요.]

나 [아, 미안.]

그녀 [괜찮아요.]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동안 그녀가 묘하게 내 품으로 파고 들려했다.
나는 돌아가는 내내 주위 시선이 쓰여 전전긍긍했다.
주위에 사람이 있는데도 내 몸에 딱 달라붙어서 응석을 부렸다.

내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다가 가끔 내 얼굴을 올려다 보기도 했다.
그녀의 체취로 가슴이 설레여 애써 평정을 가장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그녀가 굉장히 기분 좋아보이는 것 같아 안심했다.

나 [생일날,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지금이면 물어볼 수 있겠다 싶어 질문했다.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내가 차고 있던 손목 시계를 가리켰다.

그녀 [이거 주세요.]

당시 내가 차고 있던 시계는 크고 낡은 전자시계였다.
제 아무리 봐도 그녀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걸 갖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팔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그녀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가장 가늘게 채워도 그녀의 손목에는 헐렁 헐렁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기쁜 것 같았다.

나 [그게 좋아?]

그녀 [예.]

나 [중고인데.]

그녀 [오빠 시계인걸요.]

그건 대답이 되질 않지만, 일단 기뻐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랜 이동에 지쳤는지 전철로 갈아 탄 이후 바로 잠들었다.

처음으로 보는 그녀의 잠자는 얼굴, 정말 귀여웠다.






219

여름 방학 전 실습이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재개했다.
예전부터 계속 일했던 목재상 일이었다.
나는 체력이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일하는 곳 사람들도 자주 칭찬을 들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해 오후 5시에 끝난다.
일하고 있다는 실감도 드는데다 점심 도시락이 나온다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일거리를 대량으로 해치운 뒤 사무실로 들어오니 사무원이 나한테 메모 용지를 하나 건네줬다.
여자애가 나보고 연락을 남겼다는 것이다.

안좋은 예감에 바로 메모 용지에 쓰여진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 번호는 시내 종합 병원 내과 병동 것이었다.

일단 그녀와 할머니 이름을 꺼내자 얼마 안 있어 그녀가 전화를 바꿨다.

나 [무슨 일이야?]

그녀 [할머니가 입원, 했어요.]

미묘하게 평소랑 목소리가 달랐다.
아침부터 몸상태가 안좋다는 소리는 들었다.
그래서 일단 병원에 가보시라고 했는데 결국 그대로 입원하게 됐다고.

나는 일단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사장한테 사정을 설명한 뒤 조퇴 허락을 받았다.
옷 갈아 입을 시간도 아까워 작업복 그대로 병원에 갔다.







249

할머니는 응급실 한켠 침대에 링겔을 꽂은 채 누워있었다.
침대 옆에는 그녀가 앉아 있었다.
나는 얼른 그녀 옆에 갔다.

그녀 [미안해요. 그게.]

나 [괜찮아.]

그녀 [탈수 증상이래요.]

나 [응, 의사한테 들었어.]

그녀 [아르바이트...]

나 [걱정하지마.]

그녀는 동요하고 있어선지 목소리가 떨렸다.
나까지 혼란에 빠지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침착한 말투로 그녀를 달랬다.

나 [입원하나요?]

할머니 [모두들 너무 과장이 심하다니까. 이정도는 괜찮은데.]

탈수 증상 자체는 심각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예방 삼아 우선 링겔을 맞고 며칠 입원하며 건강 진단을 받기로 했다.
복지과 사람이 금방 달려와서 의사랑 협의한 결과, 병원비는 일체 생활 보호 비용으로 처리했다.

딱 좋은 기회니까 일단 입원해서 하루 경과를 지켜보고 이상이 없으면 검사.
그리고 하루 더 입원해서 이상이 없으면 퇴원하기로 했다.
할머니는 그 동안 그녀가 혼자 집을 봐야 하는 걸 걱정하셨다.

할머니 [저 아이를 부탁해도 될까?]

나 [예, 저한테 맡겨 주세요.]

그녀는 아이 취급한다고 싫어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군소리 없이 받아 들였다.
역시나 평상시랑 뭔가가 달랐다.

그녀 [할머니...어쩌면 좋을지...]

나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없어.]

나는 아무 근거도 없지만, 그렇게 위로해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없으니까 식사는 함께 하기로 했다.
태국쌀을 사용한 볶음밥과 양파 수프.
처음으로 그녀가 만들어준 밥을 먹었다.

내가 맛있다며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는 그제서야 간신히 기쁜듯이 웃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내 방에서 시간을 함께 했다.
그런데 그녀는 조금 안절 부절 못한 것이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그녀 [...여기 있어도 되나요?]

나 [응?]

그녀 [...오늘 혼자서는 못 잘 거 같아서...]

지금껏 혼자서 자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무섭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함께 자기로 했다.

밤 10시 쯤해서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일단 목욕을 하기 위해 그녀는 그녀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나도 샤워를 마쳤다.

그녀는 11시쯤 되서 돌아왔다. 잠옷은 체육복에 티셔츠.
흥분할 만한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비누 냄새에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 [이불 가져왔어?]

그녀 [여기.]

그녀가 가져온 건 베게 하나뿐이었다.
설마 같은 이불 안에서 자자는 걸까?
농담일테지.

나는 그때까지도 그렇게만 생각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긴 하지만 아직도 보호자와 같은 심정이었다.

나 [좁을 텐데.]

그녀 [...에헤헤, 괜찮아요.]

그녀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자포자기 같은 심정으로 함께 자기로 했다.
그녀가 불을 완전히 끄는 걸 무서워 했기 때문에 스탠드를 가져다 켜기로 했다.
낡은 스탠드라 별로 밝지 않지만 서로의 표정이 보일 정도는 됐다.

누워 있자니 그녀의 얼굴이 바로 옆에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방에서 함께 앉아 있을 때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내 가슴 위에 손을 올리더니 내 몸을 감싸 안듯 몸을 밀착했다.

몸의 오른쪽 절반에 그녀의 온기와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그녀의 체온에 심장 박동이 조금씩 올라갔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조금 떨어지려고 하니 그녀가 손에 힘을 줘 버텼다.

그녀 [...떨어지지 마세요. 무서워.]

나 [무서워?]

내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내 몸을 더욱 강하게 끌어 안았다.
그녀는 얼마 안 있어 잠들었다.
하지만 나는 심장 뛰는 소리에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251

새벽녘 간신히 쪽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 나절 그녀가 먼저 일어나 날 깨워주었다.

일단 그녀에게 예비 열쇠를 건네줬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할머니가 없는 동안 내 방에 와 있어도 된다는 것 이외에는.

하지만 그녀는 그게 굉장히 기뻤던 것 같다.
내가 준 열쇠를 양손으로 쥐고 방긋이 웃었다.
그녀는 학교, 나는 아르바이트.
어느 쪽이나 끝나고 나면 병원에 가기로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 잠시 빠져 나와 할머니의 상태를 보러갔다.
할머니는 식사를 하고 휴게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여러가지 검사가 많아 귀찮기도 하고 소독약 냄새 때문에 코가 망가질 것 같다는 말도 했다.

할머니 [그 아이가 함께 자자고 하지 않든?]

나는 깜짝 놀랐지만 정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나 [예, 그랬습니다. 미안합니다.]

할머니 [아니, 내가 사과해야 될 일이지. 어릴 때부터 응석만 받아주며 키워온 터라 버릇이 없어.]

할머니는 잠시 말을 끊고 내 손을 잡으셨다.

할머니 [자네가 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할머니 [혹여 내가 가게 되면, 그 아이를 부탁하네.]

나 [맡겨 주세요. 꼭 행복하게 만들겠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할머니 [고마우이.]

여러가지로 할 말은 많았지만, 결국 거기서 끝내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가니 그녀가 마중나왔다.

나는 그녀에게 준 예비 열쇠를 건네 받아 그걸 열쇠 고리에 걸어서 다시 건네줬다.

그녀 [이거 받아도 되나요?]

나 [받아주면 고맙겠어.]

평소 그녀는 장식품 같은 걸 가지고 다니지 않는 편이라 꽤 기뻐보였다.
그 날은 더운 데다 배달 일이 많아서 빨리 씻고 자기로 했다.

그녀는 전날처럼 누워서 내 몸에 딱 달라 붙었다.
그리곤 어느새인가, 안심한 듯 깊게 잠들었다.

창문 너머로 내리 쬐는 달빛에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그녀가 아직 아이 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보호자, 나는 그녀의 보호자.

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나 자신을 추스렸다.






294

입원 검사까지 한 결과 알게 된 건, 할머니가 아주 아주 건강하다는 것 뿐이었다.
탈수증상은 부업을 시간도 잊고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생긴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병원 밥이 너무 많아서 전부 먹느라 고생했다며 농담을 하셨다.

할머니는 집에 돌아오시자 마자 부업 일을 다시 시작하셨다.
그것 때문에 할머니가 그녀가 조금 다퉜다.

그녀는 한동안 맥이 쭉 빠진 것처럼 보였다.
평소 병원 가기를 싫어하던 할머니가 병원에 갔다가 바로 입원.
그 사실 만으로도 그녀는 굉장히 긴장했던 것 같다.
내 방에 엎으려 푹하니 한숨을 내쉬는 그녀에게 말했다.

나 [괜찮아?]

그녀 [예,]

나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나 [별일 없어서 다행이야.]

그녀 [걱정해서 손해봤어요.]

나 [그래, 손해봤네.]

그녀 [에헤헤.]

그동안 조금 무리해서 웃는 것 같았는데, 간신히 평소와 같은 웃음 보였다.
나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녀 [오빠가 있어주는 거, 정말 고마워요.]

할머니랑 똑같은 소리를 했다.

그녀 [믿고 있어도 될까요?]

나 [뭐?]

그녀 [병원에서 할머니한테 했던 말.]

할머니가 이야기 해준 걸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응.]

그녀는 바로 앉아 양손을 뺨에 갔다 댔다.

그녀 [...에헤헤, 그럼 믿을게요.]

나 [그래.]

그녀 [약속이에요.]

나 [응.]

그녀는 이제야 나를 타인이 아닌 의지할만한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 걸 생각하니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뭐라 표현할 길 없는 무게감을 느꼈지만, 그것까지 포함해 그녀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날은 평소처럼 저녁 10시에 돌아갔다. 그녀는 돌아가진 전,

그녀 [또 묵어도 되나요?]

대답하기 곤란했지만, 거절할 수도 없어서 결국 좋다고 말했다.

그녀 [에헤헤, 역시 아버지 같아요.]

아무 것도 아닌 말이지만, 우리 둘은 서로 서로 쑥쓰러워 했다.






300

7월말, 그녀와 할머니가 이사하는 걸 도왔다.
복지과 사람의 권유로 시립 주택에 입주하기로 한 것이다.
생활보호대상자 중 고령자와 의무 교육 대상자는 우선 순위가 높기 때문에 금새 차례가 돌아왔다.

입주할 수 있는 걸 알게 되자 그녀보다 할머니가 먼저 나한테 말을 해줬다.
시립 주택 집세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집세 절반 이하였다.
그러니까 현재 사는 아파트 집세에 전기세나 수도세까지 포함하면 거의 몇만엔이나 아낄 수 있다.

나 [그럼 이사하는 게 좋겠네요. 이사하는 거 도와드릴게요.]

할머니 [그런데 그 아이가 뭐라고 할지.]

나랑 만나고 나서 그녀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이제서야 평범한 여느 여자애와 같아졌다고 할 수 있다.
헌데 나랑 떨어져서 살게 되면 또 다시 옛날처럼 잘 웃지 않게 될 수도 있다.

할머니가 걱정하시는 건 바로 그 점이었다.
그래서 이사하고 나서도 자주 만나 달라며 부탁을 받았다.
딱히 부탁 받지 않아도 자주 만날테니 걱정 하실 필요 없다고 말해드렸다.

이사하는 곳은 현재 아파트에서 걸어서 20분 거리.
놀러가고 싶다면 부담없이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할머니 [자네가 그렇게 말해준다면 말 꺼내기가 쉽지.]

할머니는 우선 사정 이야기를 한 뒤 그래도 이사하는 게 싫다고 한다면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그녀가 장을 보고 돌아와 할머니랑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내 방에 있었다.
잠시 뒤 그녀가 내 방에 왔다.
그녀는 바로 옆에 앉아 내 얼굴을 올려다 봤다.

그녀 [가끔 놀러와도 되나요?]

나 [언제라도 와.]

그녀 [매일 와도 되요?]

나 [당연하지.]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이사할래요.]

나 [그렇게 할래?]

그녀 [에헤헤,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편해지신다면야.]

이렇게 마음을 맞추고 나니 다음 일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나는 입주 준비와 이사를 도왔다.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트럭을 빌린 덕분에 가재도구를 쉽게 옮길 수 있었다.

작은 TV랑 냉장고, 세탁기, 가스레인지, 장롱 3개, 테이블, 책이랑 학용품 조금.
부업 일하는데 쓰이는 재료. 상자 하나 분량의 식기와 생활 용품, 앨범 3권.

짐은 그것 뿐이었다.







306

그녀와 할머니가 살게된 시립 주택은 단층 연립주택이었다.
거주자는 5세대 정도로 전부 고령자 뿐이었다.

나와 그녀 사이는 이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집에 있는 휴일이나 퇴근 시간 대에는 그녀가 내 방에 왔다.
여름 방학이 되자 내가 아르바이트를 나가 있는 동안 거의 하루 종일 내 방에서 보내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나 실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그녀가 나를 마중 나와 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저녁 7시쯤되면 그녀를 바래다 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녀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 받았다.
그러다 그녀가 내 방에 있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다.
어느 순간 부턴가 그녀가 우리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너무 늦는 바람에 허둥지둥 그녀를 바래다 준 것도 한 두번이 아니다.

내 방에서 그녀가 사는 시립 주택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
거기까지 가는 동안 근처에 사는 학교 친구나 강사랑 마주치는 경우도 잦았다.

나는 당당하게 그녀를 애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그저 쑥쓰러운 건지 그때마다 내 등뒤에 숨곤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로리콘이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도 했었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가 또래보다 어려보인다는 것만 지적했을 뿐.
아직 중학생이라는 걸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와 함께 다니다 경찰한테 불려가기도 했다.
밤 10시 쯤이었다.
젊은 순경이 우리를 불러 세워 그녀의 나이나 내 입장 같은 걸 물었다.

일단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는 중이라고 말하니, 좀 더 빨리 데려다주는 게 좋다며 충고를 해줬다.
순경이 불러 세우긴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정중한 어조였기에 딱히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친구 [역시...그 사람 눈에도 범죄로 보이는 구나. 나도 그런데.]

그 말에 꽤 가슴이 쓰렸다.






310

우리 학교도 여름 방학이 됐지만, 나는 쉴 수 없었다.
실습과 보충 강의, 쉬는 날에는 아르바이트가 이어졌다.

실습에도 나름 익숙해졌다. 그래도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실습이 끝난 날, 쫑 파티를 한 뒤 집에 가 쉬고 있는데 배가 엄청 나게 아팠다.
결국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다.

간단한 검사를 받은 뒤 병명이 밝혀졌다.
급성 췌장염이었다.
바로 입원하기로 결정됐다.
나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비어 있는 큰방이 없는 지라 일단 2인실에서 링겔을 맞았다.
그녀한테 연락을 취한 건 오후 들어서 였다.
일단 지금 내 방에 있을 거라 생각해 집에 전화를 하니 역시나 그녀가 받았다.

입원하게 됐다고 말하니 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믿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 이름이랑 병실 호수를 말하니 곧장 와주겠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병원까진 자전거로 30분 거리.
일단 그녀에게 내 자전거를 타고 오라고 말했다.
이내 병원에 온 그녀는 내가 링겔을 3개나 맞고 있는 걸 보더니 가볍게 웃었다.

그녀 [오빠한테 이런 건 안 어울려요.]

그녀는 할머니때처럼 동요한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나 그녀가 동요하면 멀쩡하다는 퍼포먼스라도 보일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내가 갈아 입을 옷이나 속옷을 적당히 챙겨왔다.
너무 갑작스런 일에 그런 건 생각도 못했는데 그걸 칭찬하니까.

그녀 [간병하는 건 익숙하거든요.]

그리고 어떤 병으로 언제까지 입원하는지 그녀가 물었다.
일단 가벼운 췌장염이기 때문에 1주일 정도 입원했다가 별 이상이 없으면 퇴원한다는 걸 전했다.
그러니까 할머니한테는 별로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공중 전화로 학교랑 아르바이트 장소에 전화해 사정을 설명했다.
학교는 실습도 끝났고, 학점이랑 출석 일자도 충분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장소에는 지금 일손이 딸리는 데다, 나 역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쉬는 게 걱정됐다.
일단 저금해둔 돈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병실에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녀 [부모님한테 전화 안해도 되요?]

완전히 잊고 있었다.
전화를 거니 우리 할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알았어, 알았어 하더니 곧 전화를 끊었다.

아무튼 전달은 해줄 테니까 이후 병실에 돌아가서 그녀의 명령에 따라 잤다.






311

그녀는 내 옷가지를 가져다 세탁을 한 다음 가져다 줬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말벗이 되주기도 했다.
세탁은 병원에서 내가 할 수도 있는데, 굳이 거기까지 해주는 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단 아버지는 일때문에 오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퇴원할 때까지 내 방에 묵으면서 병수발을 들어주시려 했지만
그녀랑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다음날 바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랑 그녀의 할머니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아직도 신경 쓰인다.

오후에 문병을 온 그녀가 나를 보자 마자 사과부터 시작했다.

그녀 [에헤헤, 미안해요.]

나 [응? 무슨 일 있었어?]

그녀 [들켰어요. 애인이라는 거.]

나 [뭐? 누구한테?]

그녀 [오빠네 어머니.]

그녀가 쑥쓰러워 하는 모습은 굉장히 귀여웠다.
헌데 그보다 우리 가족들이 알게 됐단 것에 조금 당황했다.
아직 이야기 하기에는 조금 이른 단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 [그래서, 뭐래?]

그녀 [그게...잘 부탁한데요.]

뭘 부탁했는지는 딱히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나 [그 외에 다른 말은 없었어?]

그녀 [에헤헤, 그게...어떻게 오빠가 평소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시길래...]

더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다음에 가족들을 볼 것 생각하니 골치가 아팠지만, 그녀가 기뻐보였기 때문에 무시하기로 했다.
결국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을 테니까.

나는 기본적으로 무뚝뚝한데다 덩치도 커서 주위 사람들은 나를 튼튼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인지 문병하러 오는 학교 친구들은 하나 같이 겉보기랑 달리 비실이라며 나를 놀려댔다.

일단 간호학과에 다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문병오는 사람들은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남자도 섞여 있지만 대략 4분의 1 정도다.

그녀는 그게 꽤나 신경 쓰였던 것 같다.
여자애들이 문병을 하고 가면 이상하게 응석을 부려댔다.

사실 여자애들이 나를 문병오는 이유는 거의 9할 이상 나의 어린 애인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부담스러워할 게 뻔하기에 일부러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르바이트 장소 사람들도 문병을 와줬고, 실습 지도를 해줬던 사람들도 문병을 와줬다.

걱정해 주는 사람이 많아서 정말 큰 힘이 됐다.







323

4일동안 일체 음식을 먹지 않고 링겔로 때웠다.
5일째 이후부터 유동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기간 동안 천천히 몸을 길들여 퇴원할 수 있을 정도로 몸상태가 호전되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체중이 몇 킬로그램이나 빠졌다.

퇴원 하기 전에 영양사의 지도를 받았다.
한동안 단백질이나 지방이 들어간 음식을 삼가해라 말도 들었다.
병원 식사가 너무 무미 건조해서 먹고 싶은 게 잔뜩 있었는데...

그녀는 이 삼가해라라는 말을 절대 금지로 받아들였는지 이후 눈에 불을 켜고 내 행동을 감시했다.
장을 보러 가서도 내가 과자 같은 걸 손에 들면, 나지막한 목소리지만 강하게 제지하곤 했다.
몇 번 저항하려 했지만 결국 그녀의 감시 아래 가석방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그녀는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스킨쉽을 자제하고 있었다.
헌데 퇴원하고 난 그 날 저녁부터 내 손을 잡거나, 팔을 껴안거나, 몸을 기대거나, 품에 파고들거나.
예전보다 응석이 섞인 스킨쉽이 늘어났다.

나 역시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몰래 머리카락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의 온기, 체취에 젖어 있던 중 그녀가 내 배를 어루 만졌다.
조금 간지러워서 몸을 비틀었다.

그녀 [야위었네요.]

나 [괜찮아. 금새 다시 원래대로 될 거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그런데 고기 먹어도 돼?]

그녀 [에헤헤, 다 나으면요.]

가벼운 말투지만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나 반대되면 조금 반발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나 [하지만 너무 힘든걸. 조금만 먹으면 안돼? 응?]

내가 불쌍한 척 하는 연기를 하자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마치 목 안쪽에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녀 [아, 안돼요. 의사가 말하는 건 들어야 해요. 어머니처럼 되면...안돼.]

그 순간 투정을 부리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나는 또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만 것이다.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나는 그녀에게 다시는 반찬 투정같은 거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354

퇴원하고 5일이 지났다.
마침 휴일이었던 지라 아버지가 내 상태를 보러 우리 집을 방문했다.
물론 그녀도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는 건 그녀의 어머니 49재 이후 처음이었다.
그때도 가벼운 인사 이외에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이후 내 현재 상태나 입원 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보험 적용이 된다는 말에 안심했다.

크게 무리는 하지말라거나, 취업 준비는 잘 되고 있냐.
그렇게 전화로 해도 충분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랑 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내 근처에 정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이후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러 간다면 아버지가 집을 나서자 그녀에게 왜 정좌를 하고 있냐고 물었다.

그녀 [에헤헤, 역시나 바른 모습을 보여야 된다고 생각해서요.]

너무 의식한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할머니랑 아버지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지 신경이 쓰이던 차, 그 날 저녁 전화가 왔다.

아버지 [그 아이, 굉장히 밝은 표정이 됐어. 그 아이 할머니가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더구나.]
아버지 [잘 했다.]

아버지는 이후 나와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기 마지막에,

아버지 [울리지 마라.]

나는 아버지의 말에 섞인 의미를 깨닫고 조금 가슴을 쓸어내렸다.
퇴원하고 1주일 뒤, 채혈 검사를 한 결과 완쾌 판정을 받았다.

이제 간신히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녀는 검사 결과서를 보고 나서야 내가 고기를 먹는 걸 허락해줬다.

우리는 함께 소고기 덮밥을 먹으러 갔다.
식사에 기름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생활 탓인지 위가 줄어들어 평소 먹던 양의 절반도 먹질 못했다.
그녀는 소고기 덮밥을 처음 먹는다고 했지만 맛있다면서 어떻게든 한그릇을 먹었다.

그녀보다 위장이 작아진 것 같아서 조금 충격 받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하지 않았다면 분명 고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1주일 동안 식단 조절을 도와준 그녀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이 답례, 꼭 할께.]

그녀 [아뇨. 벌써 돌려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받았는 걸요.]

그러니까 답례는 필요 없다고 했다.
이 후에도 어떻게든 답레를 하려 했지만 전부 거절당했다.

입원 이후 우리 관계는 가족들 공인 상태가 되었다.
우리 어머니랑 그녀는 특히나 사이가 좋아져서 자주 전화 통화를 하곤 했다.







357

한달 뒤, 체중 역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미 졸업 논문도 끝냈고, 출석 일자나 학점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향후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취업 준비에 몰두하기로 했다.

일단 어디서 취업할지 결정하기 위해 부모님이랑 상의를 했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지금 사는 아파트 근처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굉장히 적당 적당 생각하고 행동했다고 본다.
물론 체격이 큰데다 힘이 세고 실무 경험이 있는 남자 간호사는 드무니까, 어디서나 환영 받았다.

이력서랑 건강 진단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받았다.
면접 결과도 꽤 좋았던 덕분에 결국 합격 했다.
해당 병원은 요양 시설도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일하고 싶은 장소 두곳 중 한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일단 나는 실무 현장에서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병원 일을 선택했다.
학교가 끝나 우리 집에 온 그녀에게 취직이 결정된 걸 보고했다.
그녀는 자기 일처럼 기뻐해줬다. 축하한다며 박수를 치던 중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았다.

나 [응?! 어?! 왜, 왜, 왜?! 왜 그래?!]

그녀 [아니 그게 저기...]

내가 당황해서 말을 건네도 그녀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그녀의 모습을 보았지만, 이런 반응은 처음 봤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내가 취직해서 멀리 떠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합격해도 떠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자 긴장의 끈이 풀린 것이다.
그녀가 자리에 들어 앉아 움직이질 않기에 저녁 식사는 내가 만들었다.
식사를 하도록 억지로 부추기니 간신히 한숟가락, 두숟가락 식사를 하기 시작했ㄷ가.

나 [이제 괜찮아?]

그녀 [예...]

나 [나 정말 깜짝 놀랐어.]

그녀 [...미안해요.]

그녀는 힐끔 힐끔 내 안색을 살피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녀 [...앞으로도 제 옆에 있어 주실 건가요?]

아직도 눈에 띄게 불안함이 남은 음색이었다.

나 [응. 네가 날 지겨워할 때까지 있을 거야.]

그녀 [...지겨워 할리가 없잖아요.]

그녀는 그제서야 활짝 웃었다.






359

졸업하기 전에 취직처가 정해져서 일단 안심했다.
하지만 연수를 시작하는 게 내년 2월, 그리고 현장이 투입되는 게 3월부터였다.
1달 안에 현장에서 쓸만한 녀석이 안 되면 짜른다.
그런 의미라고 생각했다.

졸업 시험과 자격증 시험은 절대 빠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이상하게 위기감이 들질 않았다.
덕분에 평소에는 공부보단 아르바이트에 힘썼다.

일하고 돌아가면 그녀와 문앞까지 마중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해준 저녁 식사를 먹고, 잠시 시간을 보내다 그녀를 바래다 준다.

언제나 할머니가 이제 그냥 같이 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그럴 수야 없는 법.

그녀는 확실히 집에 돌려 보내는 것이 내 의무라고 여겼다.
반드시 지켜야 될 마지노 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단 부모님한테도 취직처가 정해졌다는 걸 알렸다.
그런데 칭찬이라곤 잘했다. 한마디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일단 취직하면 한동안 집에 못 올 테니까 얼굴 좀 내비치는 말도 했다.
꽤 오랫동안 친가에도 가지 않았고, 앞으로 자유롭게 쉴 수도 없으테니 연말에 집에 들르기로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어머니 [그럴 거라면 그 애도 같이 데려와.]

이런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녀랑 그녀의 할머니한테 이야기를 해둔 상태라고 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어느 새 그런 이야기가 진행 중이었다는 걸 알고 놀랐다.
그녀와 함께 고향에 내려갈 걸 기대하며 얼른 연말이 되도록 기다리길 며칠.

갑자기 친척 아주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 아주머니 전화는 정말 오랫만에 빋았다.
내 취직 이야기며, 주위 친척 이야기로 한동안 환담을 나누나
아주머니가 그녀에 대해서 언급했다.

아주머니 [귀여운 아이래지? 너희 어머니한테 들었어.]

나 [아니 뭐...]

아주머니 [하지만 그러면 안돼. 노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나 [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아주머니 [부모도 없는 애랑 깊이 사귀어 봤자, 손해 보는 건 너뿐이야.]
아주머니 [기회를 봐서 얼른 얼른 내버려.]
아주머니 [그런 애들은 언제고 꼭 나쁜 짓을 하게 되있다니깐.]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주머니 [안되겠네, 안되겠네. 신부감은 내가 찾아줄 테니까,]

아주머니 [밖에서 그렇게 헤프게 지내지 말고 우리 후계자나 되렴.]

나 [죄송합니다만, 이제 그만 끊겠습니다.]

아주머니가 뭐라고 말을 했지만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한숨을 쉬더니 사정을 설명해주셨다.

그 친척 아주머니는 아버지쪽 친척으로 직계 자식은 물론 손자까지 전부 여자뿐인지라

본가를 이을 후계자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태어난 걸 알고는 초등학교때부터 끈질기게 양자로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계속 거절했지만 그쪽에선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그녀에 대해 알게 되고선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그녀 때문이라 생각한 것 같다.
나에게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나에게 굉장히 잘해주던 분이라 더더욱.






367

우리 고향에선 장례식때 본가 남자 후계자가 분향을 도맡곤 했다.
내 또래 친척들은 전부 여자뿐이라 결국 내가 이 역활을 쭉 맡았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언제나 본가 아주머니가 이게 예법이라며 나에게 맡기곤 했다.
이게 다툼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아버지랑 아주머니는 계속 그 문제를 두고 싸웠던 것이다.

아버지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머니는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 날 이후 매일 저녁 마다 전화가 걸려왔다.
아주머니는 차를 사준다거나, 용돈을 많이 주겠다거나 하며 나는 설득하려 했다.
그러다 결국은

아주머니 [그 여자랑 헤어지고 고향에 내려와 본가를 잇도록 해.]

나는 단호하게 그녀랑 헤어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아주머니 [설마 그 애한테 씨라도 뿌린 거니?]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주머니는 나랑 그녀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확신한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아주머니 [뭐야, 그 애한테 약점을 잡혔나 보구나.]
아주머니 [내가 그 애랑 직접 이야기해볼께. 돈 몇푼 쥐어 주면 분명 떨어질 거야.]

중학생 여자애를 상대로 어른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건가.
나는 귀가 썩는 것 같았지만 다시 한번 더 돌아가지도 않고 본가를 잇지도 않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이대로 가면 정말 그녀에게 해꼬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써는 아주머니를 멈출 방도가 없었기에 별 수없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며 이 문제를 아주머니에게 따지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는 본가에서 의절 당했다.

아줌마는 본가에서 의절 당하면 분명 당황하며 용서를 구할 거라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에 아주머니는 일이 생각처럼 되질 않자 친척들의 힘을 빌리려고 했다.
내가 이상한 여자한테 홀려서 집안이 엉망진창이 됐다고 친척 전부에게 선전하고 다녔다.
이에 다른 친척들이 나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사정을 찬찬히 설명하니 대부분의 경우 이해 해줬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이후 본가 아주머니는 친척들 사이에서 고립되었다.
같이 살고 있던 딸 부부도 자식들을 데리고 따로 분가해 나갔다.
이후로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오는 일은 없었다.

이것이 불과 6일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다.
솔직히 상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벅찼다.






369

그녀와 그녀의 할머니를 데리고 우리 고향에 가는 것은 중지되었다.
우리 할머니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본가 아주머니에게 했던 것 때문에
마음에 부담이 되셨던지 몸상태가 나빠지셨기 때문이다.

일단 표면적인 이유는 그거지만, 사실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녀가 친가에 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본가 아주머니가 무슨 해꼬지를 할 지도 몰랐다.
결국 우리 어머니가 할머니 건강이 나빠져서 초대할 수 없게 됐다며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그녀 [아뇨, 괜찮아요. 할머니에게 몸조리 잘 하시라고 전해주세요.]

우리 할머니는 그 말을 듣고 계속 울었다고 했다.
본가 아주머니랑 나이도 가깝고 해서 친하게 지내셨던 만큼 이번 일로 마음 고생이 크셨을 것이다.
내가 아주머니를 설득할 수 있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아주머니가 친척들 사이에서 고립되는 일도 없었을 테고.
나는 재차 자신의 한심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한테는 비밀로 새벽녘 나 혼자 전철을 타 귀성했다.
나는 우리 할머니에게 이번 일 때문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할머니는 되려 자신때문에 이렇게 됐다면서 계속 사과했다.
나는 괜찬다면서 할머니를 위로했다.

아버지랑 어머니한테도 미안하다고 했지만, 네가 사과하면 안된다고 혼났다.

아버지 [네가 해야 될 건 사과가 아니라, 그 아이를 지키는 거야.]

지금 아주머니도 저렇게 반응하지만, 언제고 이해해줄 날이 올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당분간 그녀를 이곳에 데려오는 건 자제하라는 말을 하셨다.
일단 내키진 않지만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 뒤 다시 집에 돌아왔다.
그녀가 우리 집을 방문 하기 돌아오긴 했지만 일단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 [어서와.]

그녀는 인사에 반응하지 않고, 천천히 다가오더니 바닥에 앉아 있던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왜 그래?]

그녀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나 [...이거 평소랑 반대네.]

그녀 [가끔 씩은 괜찮잔아요.]

아마 할머니가 편찮으신 것 말고 다른 일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어떤 생각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은 건진 몰라도 그녀의 손길에 느끼고 있으니
그동안 있었던 마음 고생이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상냥한 손길에 어느 샌가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 앞에서는 울 수 없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다.

그녀의 다정함이 가슴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언제 까지나 응석만 부려선 안된다고.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간신히 시험 공부에도 착수할 수 있었다.






408

연말은 그녀와 그녀의 할머니랑 함께 보냈다.
따뜻하게 데워진 코타츠 안에서 귤을 까먹으며 보내는 평범한 연말.
그리고 그녀와 근처 신사에 가서 첫 참배를 했다.
중간에 친구들을 만나 신년파티에도 참가했다.
물론 그녀도 함께.

내가 입원했을 때 그녀는 문병와준 여자애중 몇명이랑 사이가 좋아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번 신년 파티에도 함께 참가할 수 있었다.

같은 과 여자들은 나랑 동갑이거나 조금 연상들 뿐이다.
그래서 그녀를 여동생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 관계가 학교 이외에 나랑 할머니 뿐이라는 건 문제가 있었다.
사람과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늘어난 것은 그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남자 두명이랑 냄비 요리 뒷처리를 하고 있던 중, 그녀가 여자들 몇명이랑 함께 방을 나섰다.
한동안 나가 있다 들어온 그녀는 묘하게 빨간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물어보면 위험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아무 말 없이 내버려 뒀다.

그러다 새벽 4시쯤 되서 그녀가 졸린지 꾸벅 꾸벅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먼저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택시를 부르려고 했지만 그녀는 돈이 아깝다며 그대로 걷기로 하였다.
그녀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바깥에서 이런 행동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나 [좀 전에 무슨 이야기 했어?]

그녀 [예?]

나 [방에서 나갔을 때.]

그녀 [아...그게...]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나 [응?]

그녀 [오빠랑...진도, 어디까지 나갔냐고...]

그 바보들, 애한테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야.

그녀 [하, 하지만 아직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해뒀어요.]

그녀는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 했지만, 그 말 역시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어.
지금쯤이면 내가 애인한테 아무 것도 못하는 겁쟁이라는 이야기를 술안주 삼아 떠들고 있겠지.

나한테도 나름대로 평균적인 욕구는 있다.
하지만 그녀를 상대로 그런 욕구를 드러내는 건 해서 안될 짓이라고 생각했다.
무섭게 꺼려지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오빠라는 역할에 안주하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있어선 그게 불만이었겠지만.






416

졸업 시험, 취업 연수, 자격 취득.
너무 숨가쁘게 흘러가서 고생했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추억이 없다.

아버지에게 보고 겸 안부 전화를 하던 중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이사해야 된다는 말을 들었다.
아파트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토지를 팔 거니까 퇴거 해달라고 아버지측으로 연락이 왔다고 했다.
저쪽에서 보증금 반환과 이사 비용 및 일정량의 보상금을 제시한 것 같다.

아버지나 나, 둘 다 이 일로 골치 썩이는 건 싫었기에 제안을 받아 들였다.
정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 그 아파트에서 이사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니,

그녀 [...그럼 멀리 떨어져 사는 건가요?]

아니나 다를까, 또 불안한 표정이 됐다.

나 [아니, 이 근처에서 알아볼 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고 말해주니 그제서야 안심했다.
휴일에 그녀와 함께 부동산 사무소를 돌아다녔다.
일단 입지 조건도 문제지만 내 월급으로도 집세를 낼 수 있을 만한 곳이 우선이었다.

나 [아, 모르겠다. 미안한데 내 대신 선택해주지 않을래?]

그녀 [제가요?]

나 [응, 나보다는 정확할 거 같거든.]

나는 쇼핑이든 뭐든 결정하는 걸 잘 못했다.
그때까지 살던 아파트도 학교 근처에 적당히 싼 곳을 찾다가 선택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적당히 행동한 덕분에 그녀와 만날 수 있게 됐지만.
정말 이상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시간을 들인 끝에 선택한 것은 작은 맨션이었다.
평소 학교에 가면서 자주 봤던 건물이었다.
방은 아담하고 남향이라 밝았다.
집세는 조금 비싸긴 했지만, 바로 결정했다.

또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트럭을 빌려 가재 도구를 옮겼다.
그녀가 사는 시립 주택이 한층 가까워졌다.
걸어서 몇분 거리.
할머니도 가까이 사니까 든든하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

왕래가 편해지자 그녀와 밤늦게까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본격적으로 동거하는 게 좋겠다며 농담을 하셨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던 지라 나는 이미 반동거 상태라고 생각했다.







419

신년이 시작되고 얼마 후 정식으로 직장에 근무하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고령자 병동이었다.
근무를 시작할 때까지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장소에선 빠뜻이 까지 일을 해줬다.
마지막 날, 아르바이트 장소 사람들이 송별회를 해줬다.
사장이 나한테 직접 술을 따라주며 그간 고생했다고 말했다.

병원 근무가 시작됐지만, 일의 종류만 달라졌을 뿐 힘쓰는 건 똑같았다.
일단 직장 특성 상 여성들이 대부분인지라 거의 인간 리프트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나르던 물건보단 가벼웠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별 문제없었다.

휴일은 비정기적으로 바뀌었지만, 야근이 있는 만큼 쉬는 날은 보다 많았다.
그렇게 되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학생때는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거의 없었던 지라 나는 짬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중학교 3학년.
진로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나나 할머니는 이미 그녀를 설득하는 걸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녀가 취직하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와주자.
이제 그 정도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 상담했더니 크게 혼났다.

아버지 [네가 그 아이를 포기하면 어쩌자는 거냐. 너만은 그 아이를 포기하면 안되잖아.]

우리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9살 때 돌아가셨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큰형의 뒷바라지를 받아 국립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자신과 닮은 처지의 그녀에게 동질감 같은 걸 느끼셨던 것 같다.

일단 어머니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 설득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직업 알선소에 데리고 갔다.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적다.
이 마저도 노동 강도에 비해 받을 수 있는 임금은 한정되있다.
그 임금으론 가족 두사람의 생활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녀는 현실을 깨닫고 그대로 절망했다.

그녀 [평범한 생활은...어렵네요.]

일하고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평범한 생활.
그 무렵의 그녀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생활보호를 받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그래서 빨리 생활 보호 대상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취직을 서둘렀던 것이다.

생활보호 = 가난.
가난 = 어머니의 죽음.

그녀 마음속에는 이런 방정식이 성립되있었다.
보통 생활을 하고 싶다.
그 소원를 이루고 싶어 초조해하고 있었다.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함께 있을 때 그녀는 내 무릎 위에 올라 앉아 혼자 고민에 빠지곤 했다.
뭔가 말을 걸고 싶어도 그녀가 골똘히 생각하는 걸 보고 있자니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저,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불안한 감정을 애써 달래면서.






422

며칠 뒤 그녀가 학교에 가기 전 우리 집에 들렀다.

그녀 [앞으로 4년만 더 생활 보호를 받기로 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결심을 알았다.

나 [응, 힘내자.]

그녀 [예.]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녀가 학교에 가는 모습을 배웅했다.
그 때는 무엇보다 그녀가 더이상 고민하지 않게 된 게 기뻤다.

그날은 쉬는 날 이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그녀의 할머니를 보러갔다.
할머니는 굉장히 안도한 것 같았다.
나한테 고맙다며 인사를 했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니 나는 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저 아버지의 힘을 빌리기만 했다.
내가 한 거라곤 고민하는 그녀 옆에서 우왕좌왕 거리기만 한 것 뿐이다.

이런 내가 감사 인사를 받아도 되는 것일까.
물론 할머니에게 그런 말을 하면 분명 쓸데없는 걱정을 끼칠 게 뻔하니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의 실책은 역시 내 마음속 깊이 남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그녀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옆으로 왔다.
며칠 전과 비교해 확실히 마음의 부담이 줄어든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그녀 [조금이라도 좋은 직장을 찾고 싶으니까, 고등학교에 가겠습니다.]

이것이 그녀가 낸 결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평소랑 달리 기분이 좋은지 할머니는 말이 많이 하셨다.

할머니 [네 엄마도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결혼했단다.]

할머니 [그래서 너희도 그럴 생각인 게 아닌가 생각했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나 역시 걱정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걸 알고 할머니에게 사과했다.

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결혼이라거나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렇지?]

나는 무심코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식사를 멈춘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귀끝까지 빨개진 걸 보니 얼굴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할머니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렴. 늙은이 농담이니까.]

이 후 식사가 끝나고 나와 그녀는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에 들어가 앉자 그녀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 [결혼...조금은 생각해본 적 없나요?]

나는 아직 그렇게 구체적인 건 생각해본 적 없었던 지라 말을 흐렸다.

나 [...으음...그게, 아직.]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셨다.

그녀 [...저는 조금 생각해본 적 있어요.]

그녀의 중학교 3학년.
이제 조금만 있으면 16살이 된다.
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나이.

그녀 [하지만 역시 직장을 구해 스스로 돈을 벌 수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 [그래, 그때까지 함께 힘내자.]


그녀 [예, 열심히 해요.]

그녀의 말에 나도 지금처럼 적당히 있어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445

진학이 결정된 이상 그녀도 수험생이 된다.
보호자 면담이라든지 진로 지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진로로 선택한 고등학교는 그녀의 성적이라면 일단 떨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학비에 대한 것도 복지과 사람과 상담하니 생활 보호 자금으로 융통이 된다고 말했다.
덕분에 진학에 관련된 금전적인 부분이 전부 해결되었다.

그녀 가족은 항상 뭔가 불안이나 걱정을 껴안고 생활했었다.
그로 인해 생활하는데도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헌데 바로 그런 걱정거리나 불안이 일절 없는 일상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덕분에 그녀나 할머니도 조금이지만 여유를 갖게 되었다.

할머니가 성묘를 함께 가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또한 그녀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목소리에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녀와 그녀의 할머니가 여유있는 일상에 익숙해질 무렵,
나도 일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아버지가 취직하면 1년은 금방 지나간다고 말했는데, 그건 확실히 옳은 말 이었다.

일단 연수중이었지만 보너스 만큼은 확실히 나왔다.
그 보너스와 학생때 모아둔 저금을 모아 자동차를 샀다.
물론 중고였다.

차를 선택해준 건 역시 그녀.
황색 자동차,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에 든 것 같기에 사기로 했다.

일단 활동 범위가 넒어지긴 했지만 나는 일로 바쁘고, 그녀는 수험 준비로 바빴다.
결국 장거리 운행을 처음 한 건 연말에 그녀랑 그녀의 할머니를 우리 친가에 데려갔을 때 뿐이다.

어머니가 몇달 전부터 꼭 데려오라고 성화기도 하고, 작년에는 데려가지 못했기에
이번 만큼은 어떻게든 함께 가기로 했다.

간호부장한테 사정 사정 연말부터 정월까지 이틀 연속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가기를 꺼려했지만,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그녀 [걱정이네요.]

나 [어째서?]

그녀 [오빠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거잖아요.]

나 [그래서?]

그녀 [애인의 부모님을 만나는 건데, 당연히 걱정이 되죠.]

그녀는 나랑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 [실수하면 안되는데.]

생각보다 훨씬 진지해보였던 지라, 뭘 실수하면 안되는 거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446

출발하는 날 오후 그녀와 할머니를 데리러 갔다.
그녀는 척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가는 도중 대체 왜 그렇게 긴장했냐고 물어보니 우리 할머니랑 만나는 것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별로 신경쓸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잔뜩 긴장해서인지 납득하지 않은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랑 어머니가 문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그녀를 우리 할머니에게 소개했다.

할머니랑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그녀는 등골을 쭉 편 채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긴장한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올 거 같아서 굉장히 고생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우스갯소리를 몇 번 하자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는지,
마지막에 나를 잘 부탁한다는 할머니의 말에 웃는 얼굴로 대답할 수 있었다.
함께 방에 짐을 가져다 놓는 중 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 [...하아, 다행이다.]

나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니까.]

그녀 [...하지만 이걸로 확실하게 가족 전체 공인을 받은 거 잖아요.]

기쁜 말이기도 했지만 묘하게 부끄럽기도 했다.
귀성 하긴 했지만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이틀동안 놀기로 했다.
자정이 지나 나는 그녀와 단둘이서 새해 첫 참배를 하러 갔다.

거기서 고향 친구들이랑 우연히 마주쳤다.
우리는 친구 무리에 합류해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거기서 친구들한테 그녀를 소개했다.
이쪽 친구들한테서도 범죄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친구들은 따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녀에게 내 옛날 이야기를 마구 늘어놨다.
그녀는 내 옛날 이야기을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나는 친구 녀석들이 언제 내 치부를 드러낼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하도 오랜만이라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새벽 4시가 지났다
친구들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던 그녀도 어느샌가 까무룩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들쳐 업고 가게를 나섰다.

친구 [나중에 결혼식하면 초청장 보내라!!]

친구들 중 한명이 등너머로 그렇게 소리쳤다.
 
나 [알았어! 축의금이나 두둑하게 준비해둬!]

한동안 걷던 중 그녀가 내 볼을 콕콕 찔렀다.

그녀 [언제 하나요?]

나 [...]

그녀 [언제?]

나 [...조금만 더 기다려.]

그녀 [에헤헤.]

그녀는 내 목에 팔을 돌린 채 다시 잠들었다.
목덜미에 닿는 그녀의 한숨이 너무나 따뜻해서 조그만 우회해서 귀가했다.







447

연휴를 끝내고 돌아가기 전 아버지랑 할머니가 그녀에게 세배돈을 건네줬다.

그녀 [세배돈 받은 거 처음이에요.]

단둘이 있을 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한번도 체험한 적 없는 일에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이렇게 기뻐할 줄 알았다면 작년에 건네주는 건데.

그녀 [그건 좀 이상한데요.]

그녀는 가볍게 웃더니,

그녀 [애인한테서 세배돈을 받는 건 좀 이상해요.]

이렇게 단정된 이상 앞으론 세배돈을 줄 수 없다.
할머니나 아버지는 줬는데 나만 줄 수 없다니, 조금 분했다.

아버지랑 할머니가 준 세배돈은 합쳐서 무려 3만엔.
그녀는 이렇게 큰돈을 가진 건 생전 처음이라고 했다.

뭔가 갖고 싶은 게 있으면 함께 사러 가자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데리고 함께 은행에 갔다.
그녀는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어 돈을 저금했다.

그녀 [이걸로 OK에요.]

나 [뭐가 OK 인거야?]

고등학교 들어가면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건데, 그때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저금하는 거라고 했다.

그녀 [아르바이트를 하는 쪽이 취직하는데 유리한 것 같아요.]

그녀는 굉장히 진지하게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한테 있어서 고등학생 시절은 그저 친구들이랑 바보같이 놀았던 기억 밖에 없다.
허나 그녀에게 고등학교 생활은 취직 하기 위해 발판을 마련하는 기간이었다.

외형은 또래보다 어린 중학생이자만 생각하는 건 20살 넘은 나보다도 어른스러웠다.
그 갭이 너무 커서 한때는 그녀를 어떻게 대할지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

나 [그런데 수험 공부는 잘 하고 있어?]

그녀 [예,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나 [걱정 안 해도 돼?]

그녀 [예.]

나 [정말로?]

그녀 [...일단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몇번 물어보고 나서야 조금 본심을 털어놨다.
일단 선택한 고등학교는 그녀의 성적이라면 무난하게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응시자 인원수나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까 그 점이 불안한 것 같았다.

그녀 [그래도 열심히 해야죠. 모두들 응원해 주고 계신데.]

확실히 응원하고 있긴 하지만 너무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

그녀 [거기다 그 학교, 교복이 예쁜걸요.]

나 [어? 설마 그거 때문에 선택한 거야?]

그녀 [에헤헤, 조금은 그래요.]

진학을 선택할 때까지 과정이 힘겨웠던 만큼 학교를 선택하는 기준 정도는
그렇게 가벼운 이유로도 괜찬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471

그녀는 2월 초순부터 같은 고등학교에 시험을 치기로 여자애를 집으로 불러 공부를 하곤 했다.
예전에 그녀에게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 봤을 때는 대충 말을 돌리며 대답을 회피했었다.

하지만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부터 학교 생활도 즐거워진 것 같았다.
일단 공부하기 위해 아이들을 불러 모으지만, 결국 잡담으로 빠지는 일도 많았다.
그녀의 할머니는 종종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나는 너무 무리해서 공부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충고를 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녀는 간혹 친구들을 데리고 내 방에 오기도 했다.
친구들이 나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친구들은 날보고 난 뒤 덩치가 크다던가, 무뚝뚝해서 무서워보인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시험 치기 전날 뭐가 갖고 싶냐고 물었다.

그녀 [교복이 갖고 싶어요.]

그녀는 중학교 교복을 매만지면서 추억에 잠기곤 했다.

그녀 [이 옷, 이제 더이상 입을 수 없겠네요.]

그녀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사준 옷.
여러가지로 많은 추억이 담긴 옷이지만 이제 졸업하는 이상 더이상 입고 다닐 순 없었다.

그녀 [제가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정말 괜찮나요? 교복은 비싼데.]

나 [괜찮아. 그 정도는 사줄 수 있어.]

그녀가 나에게 물건을 사달라고 한 건 그게 처음이었다.
교복이라면 굳이 사이즈를 맞출 필요가 없으니까 선택하기 쉬웠다.

합격 발표 당일.
우연히 쉬는 날이었기에 그녀와 그녀의 친구랑 함께 발표를 보러 가기로 했다.
여자애 4명을 인솔한 채 걸어서 고등학교까지 갔다.
그녀와 친구들은 긴장하거나 하지 않고 화기애애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녀 [올해는 모집 인원수랑 응시자 수가 거의 맞아 떨어져서, 불합격하는 사람이 3명뿐이래요.]

우리들에게 있어선 희소식이지만, 떨어지는 사람에게 있어선 정말 억울한 소식이기도 했다.
발표 게시판에는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 이름이 게재 되있었다.
우리들이 합격 확정에 기뻐하는 사이, 멀지 않은 곳에서 남학생이 한명 엉엉 울고 있었다.
정말 안됐다고 생각하는 찰나, 그 남학생이 그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남학생 [야! 생활보호나 받는 거지주제에! 너 때문이야! 너 같은 게 있으니까 내가 떨어진 거야!]

남학생은 머리에 피가 올랐는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걸 주위에 있던 남자들이 말리는 사이,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발표장을 뒤로 했다.
나는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 [괜찮아요. 익숙하니까.]

나는 딱히 해줄 말이 없어 그저 그녀를 꼭 끌어 안았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는데 그녀의 친구가,

친구 [다음은 내가 껴안을래요~]

나 [안돼.]

친구 [에에~ 쫌팽이~]

나 [내 애인이니까, 넌 다른 사람 알아봐.]

친구 [예, 예. 잘 알았어요~]

우리가 만담을 벌이는 걸 보고 간신히 그녀가 웃었다.
그녀가 합격한 것 그리고 그녀에게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것.
나는 두가지 의미에서 기뻤다.






473

그녀에게 욕을 퍼부었던 남학생은 학교에서도 그녀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생활 보호 대상자 주제에 세금 낭비할 생각말고 직장이나 구해라.
이번에 합격한 것도 생활 보호 대상자 우대를 받은 걸 테지.
너 같은 게 있으니까, 나 같은 일반인이 피해를 입는 거다.

아마 그녀가 입학을 취소하면 자신에게 자리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나한테 그런 내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괴롭힘을 당한다는 걸 알게 된 건 함께 합격 발표를 보러갔던 그녀의 친구 제보 덕분이었다.

반 아이중에서도 그 남학생의 언동을 위험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그녀 주위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고.
담임 교사도 이걸 큰일로 보고 남학생을 따로 불러 주의를 주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담임이 아닌 다른 반 선생님이 반 아이들이 전부 보는 앞에서 면박을 줬다고 했다.

선생님 [저 아이는 자기 힘으로 합격한 거야!]

선생님 [자기 실력도 모르는 얼간이 주제에 어딜 남탓을 하려 들어!]

그렇게 호통을 치자 결국 남학생은 아무 말도 못했고, 이 후 조용해졌다고 한다.

그녀는 참을성이 강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괴로운 일을 당했는데도 나한테 내색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걸 눌러 참고 있었다니.
나는 그렇게나 의지할만한 녀석이 못되는가 싶어 굉장히 슬펐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게 분했던지라 그녀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교복을 맞추러갔다.
치수를 재고 시착을 하면서 그녀는 굉장히 즐거워보였다.
그녀가 넥타이 묶는 방법을 모르다고 하기에 가르쳐 주기로 했다.

방에 돌아와 그녀에게 넥타이 묶는 방법을 가르쳐 주던 중 은연중 물었다.

나 [그 외에 또 필요한 거 있어?]

그녀 [그 외에?]

나 [진학 축하 선물.]

넥타이를 이리 저리 매만지던 그녀의 손이 멈췄다.

그녀 [뭐든지 괜찮아요?]

나 [그래.]

그녀 [에헤헤, 그럼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좀 더 애인답게 대해주세요.]

그녀는 친구한테, 3년 이나 사귀었는데 아무 일도 없다니 이상하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내가 반론을 늘어 놓기도 전에, 단언했다.

그녀 [꼭 들어주셔야 해요?]

나 [...뭐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애매한 말이었지만 그녀는 다만 웃었다.






478

그녀 할머니의 부탁을 받아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직장 동료에게 부탁해 어떻게든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애인의 졸업식에 참가한다는 건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졸업식은 담담하게 진행됐다.
끝난 뒤에도 사진을 찍거나 하면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그녀, 그녀의 할머니랑 함께 사진을 찍기로 했다.
카메라 든 그녀의 친구가 히죽 거리며 말했다.

친구 [좀 더 들러 붙어 주세요~]

이미 충분히 가까웠지만 좀 더 가까이 붙기 위해 그녀의 어깨에 손을 둘러 껴안았다.

친구 [얼굴 좀 더 내려 주세요~]

무릎을 조금 굽혀 내 얼굴을 그녀의 얼굴과 같은 위치에 두었다.

친구 [자~ 거기서 볼에 키스~]

그녀가 굉장히 기대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지만 물론 키스를 하거나 하진 않았다.

친구 [다음에 몰래할 거 다 아는데~]

어느 샌가 그녀의 친구들은 물론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졸업식 특유의 분위기에 감화되어서 인가, 사람들은 떠들썩하니 웃으며 우리를 쳐다봤다.
구겅거리 취급이었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우리는 오후 늦게 학교를 나섰다. 특별한 날이니까 저녁 식사는 회전 초밥집에서 먹기로 했다.
그녀는 와사비처럼 매운걸 잘 못 먹기 때문에 점원에게 와사비 양을 줄여 달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나와 그녀를 쳐다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할머니 [정말 자네한테는 하나 하나 감사해도 모자를 정도야. 정말 고마우이.]

나 [아뇨.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 걸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머니 [너도 받기만 하지말고...음, 그렇지. 뽀뽀라도 해주는 게 어떠니?]

할머니의 농담에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 [으, 응!]

그 자리는 그렇게 끝났다.
그 후 내 방에서 함께 쉬고 있던 중 그녀가 말했다.

그녀 [저기...에헤헤, 키스, 하는 방법 가르쳐, 주실래요?]

나 [가르쳐 달라니.]

그녀 [해본 적 없는 걸요.]

나 [뭐...나중에 가르쳐 줄께.]

나는 그때까지도 여동생을 어르는 오빠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내 어깨를 가볍게 톡 밀었다.
입이 삐죽 나온 걸 보니 내 대답이 불만스러웠던 것 같다.

결국 그녀의 화를 풀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다.






480

고등학교 입학 당일, 안타깝게도 나는 야근이 잡혀 있었다.
그녀가 실망할 게 뻔했지만 결국 참석할 수 없었다.
다음날 집에 돌아와 한숨 눈을 붙였다.
그러다 그녀가 내 얼굴을 쓰다듬는 감촉에 눈을 떴다.
한숨만 잔다고 생각한 게 어느새 저녁 6시가 되있었다.
그녀는 내 얼굴에 삐죽 삐죽 불거나온 수염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녀 [안녕하세요.]

나 [안녕.]

아직도 졸렸지만 그대로 일어나기로 했다.
그녀는 아직도 교복을 입고 있었다.
교복 맞추러 갈 때 같이 가긴 했지만 실제로 입은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옷만 바꼈을 뿐인데, 중학생 교복을 입었을 때보다 어른스럽게 보였다.
청색 윗도리에 붉은 체크무늬 스커트
붉은 바탕에 하얀 빗금이 그려진 넥타이.
공립학교 교복치고는 꽤 세련된 교복이었다.
그녀가 예뻐서 선택했다고 할 만했다.

중학때보다 덜 엄격해서인지 지금껏 묶고 다녔던 머리카락을 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견갑골 아래까지 내려왔다.
자신이 교복을 입은 모습을 나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 [오늘부터 고등학생이에요.]

나 [응, 축하해.]

물론 그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굳이 지적하지 않고 넘어갔다.
저녁식사를 먹으러 그녀의 집으로 갔다.
가는 도중 그녀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교실에 같은 학교 출신이 많아서 지내기 편하다는 것.
그때 합격 발표를 함께 보러온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
등등등.

그녀 [둘러대기 난감해서 그냥 애인이라고 했는데...괜찮을까요?]

고등학생이랑 사회인, 굉장히 큰 벽이다.
나쁘게 보려 하면 얼마든지 나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계기로 그녀가 친구를 사귈 수 있다면 오명쯤이야 얼마든지 뒤집어 쓸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누워 있는데 그녀가 내 팔을 베고 같이 누웠다.

그녀 [에헤헤, 오늘 부터네요.]

나 [응?]

그녀 [잘 부탁할게요.]

나 [뭘?]

그녀 [진짜 애인 대접.]

나는 지금까지 애인으로써 대접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렇게 받아 들이지 않은 듯 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들여다봤다.
다만 조용히.
그 큰 눈망울에 내 얼굴이 잡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499

...키스...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내가 생각해도 겁쟁이 같은 결론이었지만, 그게 내 최선이었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 쓸어 내리며 물었다.

나 [키스, 해도 될까?]

그녀 [예.]

그녀는 머뭇대지도 않고 바로 답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게 조금 웃겨서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톡 찔렀다.

나 [수줍지도 않아?]

그녀 [지금껏 계속 기다렸는 걸요.]

나 [...그렇구나.]

그녀는 내 무릎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한쪽 뺨을 내 가슴에 대고 눈을 감았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키가 컸지만 아직도 내 품에 쏙 들어왔다.

그녀 [키스, 해주세요.]

품안에서 체온이 점점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하얀 피부가 점차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평소 부끄러운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언제나 시선을 돌리곤 했지만,
그 날 만큼은 그저 내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나는 나대로 너무 긴장해서 호흡하는 것도 힘들었다.
어떻게든 침착해 보이려고 애썼다.
내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접촉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눈이 감고, 몸에서 힘을 뺐다.

가능한 천천히, 입술만 가져다 대는 키스.
그대로 움직이지 않은 채 몇 초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입술을 떼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에헤헤.]

그녀는 내 셔츠 자락으로 얼굴을 숨긴 채 쑥쓰러운 듯이 웃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평소처럼 응석부리는 그녀를 토닥이던 중 그녀가 말했다.

그녀 [...혀, 입에 넣는다고 생각했는데.]

나 [그런 키스, 하고 싶었어?]

그녀 [예.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그러니까!]

나 [하고 싶다면 다음에 해줄께.]

그녀 [해주세요.]

나 [어?]

그녀 [꼭이에요?]

나 [...아, 그래.]

이런 이야기는 농담으로라도 입에 꺼냈다간 취소하기 힘들다.
앞으로는 향후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기로 했다.






501

그녀는 고등학생 생활이 시작되자 마자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았다.
월수금 3일 동안은 학교 끝나고 나서 2시간 정도.
토요일, 일요일에는 6시간 일해서 한달에 4만엔을 받는다.

사전에 복지과 사람과 협의를 했는데, 이걸 할머니 부업 수입과 합치면 지원금액과 거의 같았다.
결국 두 사람의 수입이 일부 공제에서 전액 공제로 바뀌게 되었다.
일을 하는데도 수입이 줄어들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서 투덜투덜 거리고 있으니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 [지금껏 도움을 받았는걸요. 이제 줄일 때도 됐어요.]

아르바이트 장소는 지역 특산품을 사는 가게였다.
그녀가 맡은 일은 계산대를 지키는 것과 상품 포장이었다.

첫날에는 꽤 즐거워 보였기 때문에 앞으로 잘 해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날부턴 다리가 아프다면서 칭얼거렸다.
힘쓰는 일을 경험해본적 없는 그녀에게 6시간동안 계속 서서 하는 일은 꽤 힘들었던 것 같다.
드물게 약한 소리를 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게 기뻤다.
그녀는 괴로운 일, 슬픈 일을 될 수 있는 한 숨긴 채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헌데 투정이라고 해도 이렇게 나를 의지해주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니 꽤 기뻤다.

나 [그럼 내가 마사지 해줄께. 일단 목욕하고 와.]

일단 그녀를 집에 보내 탕에서 몸을 풀게 했다.
간호학을 배우긴 했지만 마사지하는 방법은 거의 모른다.
실습하러 갔을 때 조금 배운 게 다 였다.
그러니까 일반인이랑 다를 게 없었다.

막상 말은 했지만 그녀에게 마사지를 하려니 조금 어떻게 해야 될 지 짐작도 안 갔다.
일단 아프지 않도록 천천히 장딴지를 비볐다.
손가락이 아닌 손바닥 전체를 사용해서 응어리를 풀도록 비볐다.
처음에는 조금 아파하는 것 같았지만 점차 근육의 긴장이 풀렸는지 기분 좋다는 말을 했다.

꺼림직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일단 외간 남자가 다리를 어루만진 거니까.
다음날, 할머니에게 마사지를 했다는 보고를 했다.

할머니 [그래도 다행이네. 애인한테는 제대로 응석부리는 것 같으니까.]

내 앞에서는 내색도 안한다면서 할머니는 쓴웃음을 지었다.






507

힘든긴 했지만 열심히 노력하길 1달.
그녀는 마침내 첫월급을 타게 되었다.
자랑스러운 듯 월급 명세서를 나에게 보여줬다.
자신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증표라는 듯이.

그녀 [내가 일해서 번 돈이에요.]

나 [그래. 네가 번 돈이야.]

그녀 [에헤헤, 이제야 간신히 이뤄졌어요.]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월급 전액을 할머니에게 건네줬다.
할머니는 전부 받을 수는 없다면서 그 중 1만엔을 용돈으로 다시 그녀에게 건네줬다.
그녀는 그때까지 그렇게 큰 돈을 용돈으로 받은 적이 없었다.
당황하긴 했지만 결국 할머니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도 지갑에 만엔짜리를 들고 다니다 흘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걸 전부 동전으로 바꿨다고 했다.

그 날 저녁, 그녀가 나한테 소고기 덮밥을 사줬다.
지금껏 먹었던 어떤 소고기 덮밥보다 맛있었다.

이후 아르바이트 일에 익숙해졌는지 힘들다고 칭얼거리는 일은 사라졌다.
하지만 종종 다리나 등을 마사지 해달라고 조를 때가 있었다.
처음 마사지를 받은 날 기분 좋게 잘 수 있었기 때문에 버릇이 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사지 하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배우기로 결심했다.
마사지 하는 방법이 실린 책자를 구입하거나 하는 방법을 아는 동료에게 부탁해 배우기도 했다.

노력한 보람이 있었던지 그녀는 내 마사지 받으면 몸이 굉장히 편해진다고 말했다.
그녀가 언제나 기뻐해줬기 때문에 마사지는 내 취미 겸 특기가 되었다.
 
이때쯤해서 그녀가 자기 집에서 자는 것보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날이 점차 늘어났다.
집에 돌아갈 때는 식사를 하러 갈 때 정도.
할머니는 점차 독립할 준비를 갖춘 것 같다면서 오히려 기뻐했다.

너무 경계를 안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만큼 나를 신뢰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일단 애인보다는 보호자.
최소한 그녀가 교복을 입고 있는 동안은 내가 그녀의 보호자라는 걸 잊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가끔씩 그녀가 응석부리며 스킨쉽을 할 때는 이성의 끈이 끊어져 나갈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의 오빠, 나는 그녀의 오빠, 나는 그녀의 오빠.
이렇게 자신을 세뇌하며 버텼다.







509

일에 익숙해지니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나는 게 빨라졌다.
편하지만 변화가 없는 매일 매일, 눈치챘을 때는 어느샌가 1달이 부쩍 지나가 있었다.
허나 그런 일상이 너무나 즐거웠다.

일을 끝내고 그녀의 집에 가면 할머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맞이해주셨다.
조금 있다 그녀가 집에 오면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를 끝내고 목욕을 마치면 할머니는 잠자리에 드셨다.
그리고 그녀는 내 방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마사지를 받지 않는 날은 느긋하게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기도 했다.

서로 보고 싶은 채널을 보기 위해 티격태격하는 것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둘 다 형제가 없기 때문에 꽤 신선한 체험이었다.
나는 뉴스랑 스포츠 중계 밖에 보지 않는다.
반면 그녀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어 했다.
사실 나랑 그녀가 보는 방송은 시간대가 겹치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실 티격거리는 것도 그녀의 응석 중 하나 였다.
그만큼 나한테 마음을 열어준 증거일까, 그녀는 응석꾸러기가 되었다.

확실하게 진짜 애인 대접, 어른 대접해달라고 말하면서 하는 짓은 어린애 같았다.
중학생 때보다 어리광을 부렸다.
물론 평상시 그녀는 이렇게 응석도 부리지 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힘든 일이 있으면 속내에 숨기고 꾹꾹 참는 편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렇게 응석을 부리는 건 나에게 있어선 되려 기쁜 일이었다.

내 무릎 위에 앉는 건 익숙해졌지만, 내가 누워 있을 때 올라타는 건 아무래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내가 졸릴 때 내 몸 위에 올라타서 딱 들러 붙는다.
일단 입으로는 무겁다. 덥다 하면서 떼어 내려고 하지만, 나름 꽤 부끄럽기도 했다.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그녀 나름대로 나를 유혹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키가 작다는 것을 꽤 신경 쓰곤 했다.
허나 가끔씩은 나와 체격 차이가 꽤 난다는 걸 이용해 품안에 파고들거나
팔베개를 조르거나 해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513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 대학 시절 같은 과 여자 친구에게서 초청장이 왔다.
나는 물론 이거니와 그녀하고도 친한 사이였다.
친구의 남편은 상당히 연상인 사람으로 한번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나랑 그녀는 지금껏 한번도 결혼식에 참석한 적 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참가하기로 했다.
일단 꽤 먼 곳에서 결혼식을 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숙소를 정하는 건 그녀에게 맡겼다.
그녀가 입고 갈 옷을 산 뒤 준비 끝.

결혼식 당일 식장 앞에서 같은 과 동기 여자들이랑 합류했다.
합류 하자마자 여자애들이 그녀를 화장실에 데리고 갔다.
조금 있다 돌아온 그녀는 엷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가볍게 루즈를 바른 그녀의 모습에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때는 호화로운 결혼식이 부러웠던 걸까,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 자리에서 친구가 임신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그것이 부러웠던 것이다.
친구는 그녀의 내색을 깨닫고,

친구 [두 사람도 어서 빨리 결혼해서 애 낳아. 축하해줄 사람 많으니까.]

피로연 분위기 때문일까, 주위 사람들이 합창 하듯 내 결단을 촉구했다.
4년이나 사귀었으면서 지금껏 그런 내색 한번 보이지 않은 댓가가 돌아왔다.
나는 술기운을 빌어 소리쳤다.

나 [일단 약혼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는 술이 굉장히 약한 편인데도 주위 사람들 권유로 주는 대로 퍼마셨다.
그녀도 한잔 마셨는지 눈이 빨개졌다.

2차가 끝나고 풀려났을 때는 다리가 취청거려 걷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숙소에 도착한 건 12시가 지났을 때였다.
평범한 비지니스 호텔방이었다.
우리는 둘 다 자리에 앉아 서로를 쳐다봤다.

그녀 [이제 와서 농담이었다고 하는 건 없기 에요?]

술에 취하긴 했지만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나 [걱정하지마.]

그녀 [에헤헤.]

나 [대답해줘.]

그녀 [예? 대답?]

나 [난 대답을 듣지 못했어.]

그냥 맹숭맹숭하게 말하는 건 재미없어서 심술을 부렸다.

그녀 [아! 할게요! 꼭 하고 싶어요!]

일단 가족들한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적당한 시기에 가족들을 전부 모아 발표하기로 약속했다.
오는 길에 싸구려지만 반지를 두개 샀다.
그녀와 나의 약혼 반지.
누가 보면 들킬지도 모르니까 내 방에 있을 때만 하기로 했다.

식도 올리지 않은 초라한 약혼이지만 행복했다.






517

약혼을 하고 며칠 뒤, 그녀는 갑자기 머리카락을 잘랐다.
등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을 귀가 드러날 정도로 짧게 잘랐다.

나름대로 어른스러워 보일까 싶어서 이미지를 바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꽤 인상이 바뀌었다.
예전보다 훨씬 밝고 활기찬 인상이 되었다.

그녀는 바람이 귓전을 스칠 때마다 간지럽다고 말했다.
그래서 귓볼을 가볍게 만져주니 몸을 움찔 움찔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한동안 그녀의 반응을 보며 즐기던 중 그녀가 발끈했다.
그녀도 내 귓볼을 어루만졌지만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에게 있어선 단순한 이미지 체인지 였을 뿐이지만,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여자가 머리카락을 자른 다는 건 꽤 일이었던 것 같다.

분명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한 그녀의 친구들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지만,
그녀는 결국 비밀을 지켜냈다.

누구도 모르는 두 사람만의 비밀.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 묘하게 기분이 들떴다.

그 해 연말, 어떻게든 두 사람의 스케줄을 맞춰 귀성하기로 했다.
역시 그 날이 다가오니 긴장됐지만,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다.






518

귀성 하자 마자 중요한 말이 있다면서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아버지, 어버니, 우리 할머니, 그녀의 할머니.
이렇게 네분이 앉아 있는 앞에 우리 두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나 [저희, 약혼했습니다. 허락해주세요.]

아버지 [음, 두 사람이 좋다면 나는 더 이상 할 말 없어.]

아버지의 한마디에 가족들 전부 우리의 약혼을 허락해줬다.
사실 예전에 귀성했을 때 우리 가족이랑 그녀의 할머니가 우리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우리가 약혼한다고 해서 반대할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 날 저녁, 친척들이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친척들도 나랑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사이를 축하해줬다.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게 기뻤던 걸까, 그녀의 얼굴에서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 떠나질 않았다.
떠들석한 술자리를 벗어나 화장실에 가던 중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 [난 또 너희들이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길래 애가 들어섰나 했다.]

아버지는 너털 웃음을 털어 놓았다.

아버지 [아직 손자볼 일은 없겠지?]

나 [...아직이야.]

아버지 [너무 앞서 나가지 마라.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되니까.]

아버지가 이렇게 환하게 웃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520

딱히 알리지도 않았는데 내가 약혼했다는 소문은 동네 전체에 퍼진 것 같았다.
어디선지 모르게 친척들이 모여와 축하 인사를 하러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축하해준 건 아니었다.

친척들한테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멋대로 행동했다간 친척들한테서 고립된다.
의절까지 당해놓고 아직까지 반성도 안 한 거냐.
등등등.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내가 못마땅해서라기 보단 아버지가 싫어서 하는 소리였다.

우리 아버지는 이 근처에서는 드물게 국립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었다.
거기다 나름 고위 공무원이라 집안 살림도 넉넉했다.

주위 시골 친척들한테 있어서 그걸 질투해서 아버지를 싫어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결국 그 원망이 이번엔 내 약혼이 표출된 것이다.

주위 분위기도 있어서 시비가 붙거나 하진 않았지만,

아버지를 좋아하는 친척들은 꽤 불편했던 것 같다.






521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덕분에 졸업하고 나면 정사원으로 일하는 게 확정되었다.
아르바이터를 섞어도 고작 10명 남짓 일하는 곳이었지만, 보너스도 나온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껏 성실하게 일한 것이 인정받은 것 같아 굉장히 기뻐했다.

그녀 [...저 아이를 갖고 싶어요.]

그녀는 쭈뼛 거리며 말했다.

나[...지금?]

 

그렇게 물어보자,

 

그녀 [졸업하고 1년 정도 돈 모으면요.]

일단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무리라며 말을 이었다.

그녀 [어머니가 20살에 저를 낳았으니까, 저도 20살에 엄마가 되고 싶어요.]

엄마가 되어 남편과 함께 아이를 기른다.
그녀는 정말 큰 꿈을 표방하는 것처럼 말했다.







522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정사원이 되어 첫 월급을 받은 날.
그녀의 가족은 생활 보호 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

그녀 [이제 간신히 평범한 생활이 시작됐어요.]

그녀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생활비로 절반을 할머니에게 드리고 자신의 용돈은 1만엔.
나머지는 전부 저금했다.

그녀 [우리 아이를 위해서 하는 저금이에요.]

그 말에 공연히 쑥쓰러웠지만, 나도 함께 저금하기로 했다.
나와 그녀의 취미는 독서였다.
때문에 데이트를 할 때도 도서관이나 만화 카페에 가는 정도였기 때문에
돈을 낭비하거나 하는 경우도 없었다.
매달 조금씩 돈이 모이는 게 기뻤다.

평소처럼 집에 온 그녀에게 마사지를 해주던 중 이었다.

그녀 [...저금 아직 모자라지만...아이...만들까요?]

난 그녀의 갑작스런 말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 [저 이제 취직해서 돈도 벌고 있으니까, 아이가 아니에요. ...그렇죠?]

난 뭔가 변명을 하려 했지만,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 이제 그녀는 아이가 아니다.
그녀는 아직니까 나는 보호자.
이런 대전제가 단번에 날아갔다.

나는 결국 그녀를 아이나 동생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한명의 여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533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가 진정한 남녀 사이가 됐다는 것 외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결혼도 아직 안 했다.
다만 할머니가 혼자 살고 싶다고 해서 그녀의 거주지가 내 방으로 바꼈다.

나는 아직도 간호사로써 일하고 있으면, 그녀는 지금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할머니도 부업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거야 말로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고민이 있다면 최근 그녀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아이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내 직장 동료인 여자 간호사들이 그녀한테 여러가지 이야기를 불어 넣어서 꽤 곤란하다.



가까운 시일에 그녀 어머니 기일이 돌아온다.
매년 마다 그렇지만, 그때 그녀랑 함께 또 성묘를 하러갈 생각이다.

지금은 둘이서 가지만 언젠가 세 명이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 가장 큰 소망은 그것이다.





여기까지 내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그때도 이야기를 늘어 놓고 싶은데...괜찮으려나?


아무튼 난 이만 갈게.
모두 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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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초등학생일 때부터 나는 왕따를 당했다.
아이들은 장난삼아 나에게 돌을 던진 적도 있다.
나를 비호해 주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전학을 가게 되었을 때, 담임 선생이 말했다.


「너한테는 송별회 필요 없지?」


중학생 무렵. 주위는 초등학교때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 뿐이었다.
다시 괴롭힘이 계속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무시당했다.
쉬는 시간 중엔 계속 자는 체

급식 시간때 자리를 붙여서 먹는 애들도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따돌림 받았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다.
다른 사람의 10배 정도는 노력했다.
그 결과 학년 20등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공부해서 20등







13

고등학생 일때
평상시 술은 커녕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는 어머니가 취해 있는 모습을 봤다.
어머니는 나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미안해…널 낳아서 미안해…」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말이었다.





21

그런던 나에게 마침내 친구가 생겼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시작되는 날
앞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줬다.
기뻤다.

그 아이는 성격도 좋고 이래 저래 반의 중심에 있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말을 걸어준 것이다. 진심으로 기뻤다.





27

그러던 어느날 화장실 독실에서 일을 보던 중, 바깥에서 대화소리가 들렸다.


남 1 「어이, 너 그 뭐냐. xx 있잖아. 그 녀석이랑 사이 좋은 거야?」

남 2 「아, 맞아. 너랑 성격 맞아 보이진 않던데 말야.」


그리고, 이어진 친구의 말


「일단 자리 가깝잖아. 그러니 말은 붙여둬야 겠다고 생각해서 말야. 일단 나라도 인기 관리
정도는 한단 말이지. 사람 사귀는데 제한 두지 않는다, 뭐 이런 이미지 관리랄까?
뭐, 진심으로 말하자면 진짜 친구는 되기 싫지만 말야」

그 날, 나는 하교 종이 칠 때까지 화장실에서 나갈 수 없었다.






35

아버지에게 고민을 털어 놓은 적이 있다.

나는 어째서 사는 건가요? 무엇 때문에 사는 건가요?

…이제 죽고 싶어요


부친은 나를 꼭 닮은 무뚝뚝한 얼굴로


「살다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 나는 네 어머니랑 만나 아들까지 얻었지.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그런 말로 날 위로했던 아버지가 죽었다.

과로사 였다.

회사는 그 사실을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보상은 당연히 없었다.

장례식에 왔던 회사 사람들이 장례식이후 모임에 대해 말하며 웃고 떠드는 걸 보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는 아무래도 좋은 거 였던 듯 싶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다만 너무한 현실을 감당못해 멍해 있었을 뿐

어머니도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41

고등학교 졸업 후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
운송업체의 사무원으로

웃기게도 아버지와 같은 업종이었다.
일하기 시작한지 3개월, 상사의 나에 대한 평가는


「쓸모 없는 놈」


상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나를 욕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쓸모 없는 녀석이니까






48

일이 바빴다.

감기로 40도 가까이 열이 올랐지만, 쉴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의미론 행복했다.
바쁜 것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을 때는
동시에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에.






59

그 회사에서 일한 지 3년.
아직도 쓸모 없는 녀석 취급인 나에게 유일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아가씨가 있었다.
내가 일한지 3년째 되던 해, 입사한 아가씨였다.


「안녕하세요」


이 한마디와 웃는 얼굴이 나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어 버렸던 나에게, 그녀는 한가닥 희망을 심어 주었다





67

수개월 뒤

아직도 웃는 얼굴을 보여 주는 그녀에게 저녁 식사 신청을 해봤다.
그런 자신이 이상하게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다른 인간이 된 것 같았다.

그녀의 대답은


「그거 좋죠~ 어디로 갈건데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에게 감사했다.






73

고백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생각한 뒤…몇번이나 연습한 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었던 건 딱 한마디


「…조, 좋아합니다…」


스스로도 한심할 정도로 짧았다.






86

「미안해요. 지금은 누군가랑 사귈 생각 없어요. 여러가지로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그녀의 대답이었다.

슬펐지만, 동시에 납득할 수 있었다.

나는 되려 기뻤는지도 모른다. 나를 거절한 그녀의 방식에





몇 개월 뒤, 그녀는 결국 퇴사했다.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상대와는 3년동안 사귀고 있었던 것 같다.


당연한 일이지만, 결혼식 초대는 받지 못했다.






101

실연…

그런 생각은 아예 날아가 버렸다.


「그렇지, 언제나 그렇지 뭐」


어느사이엔가 버릇이 되버린 체념





그래, 일에 생을 바치자. 아버지와 같이

나에겐 그것밖에 없다.

일만은 나를 필요로 해주니까.

…할 일은 많이 있어






123

「너, 역시 이 일에는 적합하지 않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어? 그런 일을 계속해도 괴로울 뿐이야
조금이라도 젊은 지금, 전직 같은 거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일한지 4년째 되는 시업식 날, 상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바보지만, 상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다음날 , 사표를 낸 나에게 상사는 밝은 어조로


「수고했어!」


직장 동료들은 언제나 처럼 일하고 있었다.
언제나 이상으로 바쁘게 움직이며.







145

그 날밤 늦게까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온 나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처럼 상냥한 웃는 얼굴로


「수고 하셨습니다」


라고 말했다.


「회사, 그만뒀어요」


나의 한마디에


「수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웃어주셨다.






160

지금부터 1년 전, 일자리를 찾고 있던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 어머니가 없었다.

밤 늦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였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평소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몸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입원하란 말을 들었다고

오늘은 더이상 면회를 할 수 없으니 내일 필요한 것들은 병원에 가져오면 좋겠단 말을 들었다.

다음날 , 보험증이나 갈아입을 옷가지등을 챙겨 병원에 갔다.







170



의사에게 들은 한마디

위암 말기

더이상의 치료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라고 했다.


여느 때처럼 상냥한 어머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혼자서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불단 앞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버지 앞에서 우는 건 이번이 두번째였다.








189

입원한지 1개월 정도됐을 때, 어머니가 스치듯이 하지만 상냥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제 살 수 없지? 알고 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여느 때와 같은 목소리로


「그래, 일자리는 찾았어? 어서 찾으면 좋겠는데」


나를 걱정했다.

그만 참지 못하고 울어 버렸다.

어머니는 그런 내 손을 아무 말 없이 어루만졌다.







196

얼마 안되는 친척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정말 좋은 사람인데, 어째서…」

「아까운 사람이…」


상투적인 대사들이 즐비했다.

나는 그저 담담하게 상주 역활을 수행했다.







205

그리고 지금, 혼자서 살고 있다.

안 그래도 휑하니 넓어보이던 집은 그 날이후 한층 더 넓게 느껴진다.

납골 단지는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가벼웠다.

나는 어머니의 물품을 정리하던 중 노트를 발견했다.

어머니 병실, 침대 아래에서 나온 노트였다.







216

일기였다.

입원한 이후 1개월 부터 돌아가시기 전 2 주 전까지의.

마지막 날 적힌 일기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적혀 있었다

2,3일 분의 일기를 읽고 울었다.

일기에 쓰여져 있는 건 전부 '나' 였다.






234

마지막 페이지에서 3일 정도의 내용

그건 모두 나에 대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xx, 너 에게 계속 사과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

xx가 따돌림 당했던 것, 계속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약한 인간이니까, 단지 상냥하게 대해주는 수밖에 없었어

학교에 가볼까도 하는 생각도 했지만, 갈 수 없었어.

언제나 xx가 상냥한 얼굴로


「오늘도 즐거웠다」


라는 말을 했으니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는 xx를 배반할 수 없었어

기억하고 있니? 네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취해서 말한 적 있지


「낳아서 미안하다」


라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네가 이렇게 괴로워 하는 건 다 내가 널 낳았기 때문이라고



(중략)



하지만 나는 너를 낳아서 정말로 행복했어.

그러니까, 너도 행복해지면 좋겠어

아니, xx라면 행복해질 수 있어

신님, 부탁합니다. 제발







245

놀랐다.

설마, 그렇게 취해있던 어머니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슬펐다.

계속 후회하고 계셨다는 걸 알았으니까


괴로웠다.

그 날 이후 상냥한 얼굴로,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배웅해 주신 게 죄책감 때문이란 걸 알았으니까


통곡 했다.

내 몸 어디에서 그렇게까지 눈물이 나올 수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이틀 밤낮을 울고 또 울었다.











일어섰다.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었다.

나는 여전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이며

인생은 역시나 괴로움 투성이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그렇다 해도




일어섰다. 행복해 지기 위해,

그러니까 그러니까












「살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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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꼴甲
,

 

1

집에 오는 도중 바람이 강해
길거리 여고생의 스커트가 들썩이던 것에 시선이 빼앗겨서






4

횡단 보도 앞쪽에 쑥 올라온 봉 같은 거 있잖아wwwwww
차가 인도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해놓는 거 wwwww
그것에 자전거로 돌진 wwwwwwwwwwwwwww
그 결과 wwwwwwwwwwwwwww






7

자전거 바구니에 넣어뒀던 종이 봉투에서 wwwwwwwwwwwww
내 새로운 신부 (더치 와이프)가 들어있는 상자가 화려하게 회전하며 전방 다이브 ww







8

초 wwwwwwwwww





9

우리의 기대 대로 wwwww





11

새로운 신부 wwwwwwwwwwwwwwwwwwwwww







13

겉면에 모에 애니메 케릭터가 추잡한 자세로 인쇄되어 있는데다 wwwwww
상자 뒷면에 사용법이 매우 상세하게 적힌 상자가 wwwwwwwwwwwwwww
앞서 가고 있던 여고생 무리 (아마 고1 www) 한가운데 착지 wwwwwwww

실로 기적의 타이밍 wwwwwwwwwwwwwwwwwwwwwwwwww






17

여고생 A「우왓!」

여고생 B「깜짝 놀랐네, 뭐야 이거?」


보셨습니다 wwwwww

나 쫄았다 wwwwwwwww 굉장히 쫄았다 wwwwwwwwwwwww
인생 그리 길게 산 건 아니지만, 베스트 3에 들어갈 정도 wwwwwwwwwww
냉정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현 상환 파악 wwwwwwwwwwwwww
다행이도 근처에는 그 여고생 군단밖에 없었다 wwwwwwwwwwww
조금 안심 wwwwwwwwwwwwwwwwww

조금 냉정해진 덕분에 신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wwwwwwwwwwwwwwwwwww

덕분에 얼마나 터무니 없는 상황인지 재인식 wwwwwwwwwwwwww

잠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데, 여고생 군단








20

신부는 어떻게 됐어? wwwwwwwwwwwwwwwwwwwwwww








21

여고생 군단(3명)이 일제히 이쪽을 보기 시작 wwwwwwwwwwwwwww
우왁~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
얼굴을 들켰다 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
냉정을 가장하며 한손으로 안경을 추스른 이 몸 wwwwwwwwwwwwwwwwww
뭐 하는 거야, 나 wwwwwwwwwwwwwwwwwww
그러고 있자니


여고생 A「·····이거, 떨어뜨리셨죠?」








29

오랜만에 vip라는 느낌이 드는 스레다 wwwwwwwwwwww






32

아니아니아니아니 wwwwww
딱히 지적해주지 않으셔도 알고 있습니다. 아가씨 wwwwwwwwwwwwww



여고생 B「저기, A 짱 이건·····」



응? 그게 뭔지 궁금한가? wwwwwwww

그것은 이몸의 신부다 wwwwwwwwwwwwww

여고생 C가 갑자기 신부가 든 상자를 손으로 들었다
















33

이것은 체포 플래그 wwwwwwwwwwwwwww





35

인생 끝났다 \(^o^)/





36

>>1

웄긴다 wwwwwwwwwwwwwwwwwwwwwwww





37

>>1

너는 뉴타입으로 각성하는 것이다 wwwwwwww




40

>>37

공기 신부로 뉴타입 각성 플래그 wwwwwwwwwwwwwwwwwwwwwww








48

여고생 C는 상자 윗면에 그려진 애니메 케릭터를 차근히 살펴보기 시작 wwwwwww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wwwwwwwwwwwwwww

당시 내 심정은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wwwwwwwwww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실로 산과 같지만 wwwwwwwww
신부는 앞으로 앞으로의 내 라이프 플랜에 가장 중요한 존재 wwwwwwwwwwww
버리고 갈 수 없기에 그대로 굳어져 있는데

여고생 A가






68

여고생 A「자전거 바구니 망가졌네요, 다른 짐은 괜찮은가요?」


초 상냥해 wwwwwwwwwwwwwwwwwwww

솔직히 자전거의 파손 따위는 어찌되든 상관없는 상황 wwwwwwwww
그제서야 들여다본 자전거 바구니가 凹 ← 이 한자처럼 되있었어 wwwwwwwww

이몸 「아, 진짜다. 패여있어···」

쿨이다 wwwwwwwwwww 쿨해져라, 이몸 wwwwwwwwwwwwwww










70

>>68

진짜 쿨한 녀석이라면 그 상황에선 우선 도망친다 wwwwwwwwwwwwww





78

이런 걸로 플래그가 선다면, 역앞에서 헌팅 기다리는 아가씨 앞에

어른의 장난감을 마구 던져놔준다 wwww





82

>>78

그건 즉석에서 체포다 www





90

뭔가 두근 두근 하잖아아아아아아아아아 wwwwwwwwwwwwwwwww








103

여고생 C가 손에 든 상자에서 시선을 올려 이몸의 얼굴을 응시하기 시작 했다 wwwwwwww

그렇게 쳐다보지마 wwwwwwwww
그렇게 본다면, 나 운다 wwwwwwwwwwwwwwwwwwww
계속 쳐다 본다면 그 자리에서 대놓고 울 각오를 하고 있는 중, 여고생 C가 상자를 건네주며


여고생 C「자, 이거 조심하세요」


초 상쾌한 미소 wwwwwwwwwwwwwwwwwwwwww
신부에 대한 건 보지 않는 걸로 해주시는 겁니까 wwwwwwwww
가정 교육이 훌륭한 집안에서 크셨나 보군요 wwwwwwwwwwwww
그러던 중 여고생 B가







105

>>103

>계속 쳐다 본다면 그 자리에서 대놓고 울 각오를 하고 있는 중

그런 각오 정할 시간에 도망쳐라 wwwwwwwwwwwwww




108

여고생, 너무 상냥해 wwwwwwwwwwwwwwwwwwwwwwwwwww





109

B에게 기대





111

여고생 C의 배려가 너무 능숙하다 wwwwwwwwwwwwwwwwwwxw





114

어른스러운 C에게 반했다 wwwwwwwwwwwwwwwwwwww








147

허둥지둥 종이 봉투에 신부를 격리 수용 wwwwwwwwwwwww
나  초 안도의 한숨 wwwwww
그러고 있는데


여고생 B「남자는 어쩔 수 없는 거죠. ww」



완전히 들켰습니까?!!

마지막 쐐기를 꽂는 한마디, 매우 감사 합니다 つД`)・゚・。・゚゚・*:.。..。.:*・゚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wwwwwwwwwwwwww

요즘 여고생은 그 추잡한 패키지를 보고
애니메이션 DVD 박스라고 생각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wwwwwwwwwwwwww


여고생 A「(웃음)」

여고생 C「난 잘 모르겠는데, 이런 거」



일동 수줍은 미소 wwwwwwwwwwwwwwwwwwwwwwwwww









149

너, 그건 플래그다 wwwwwwwwwwwwwwwww





150

너무나 상냥한 여고생 때문에 울었다 wwwwwwwwwwwwwwwwwwwwwww





151

B의 불필요한 한마디가 마음에 스며들어 wwwww





153

>>141

실로 오랜만에 VIP 퀄리티를 자칭할만한 스레다 wwwwwwwwwwwwwwwwwwww





159

1의 얼굴과 상황을 상상하고 뿜었다 wwwwwwwwwwwwwwwwwwwwwwwwwww





209

VIP 퀄리티가 돌아왔다 wwwwwwwwwwwwwwwwwwwwwwwwww

아니 넘쳐나고 있어 wwwwwwwwwwwwwwwwwwwwwwwwwwwww







215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혼자서 갈색머리였고) 여고생 B가
이상할 정도로 친밀하게 말을 걸었다 wwwwwwwwwwww

나 이제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습니다 wwwwwww
슬슬 지나다니는 사람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wwwwwwwwwwwwwwwwwwww
뒷골목으로 맹대쉬 하고 싶건만 wwwwwwwwwwwwww
하지만 연하가 말을 건 것은 편의점 점원을 제외하고 3년 만이니까 별 수 없었어 wwwww



여고생 B「대학생 인가요?」









217

진성 바보다 wwwwwwwwwwwwwwwwwww





218

뭣 때문에 회화를 계속한 거야 wwwwwwwwwwwwwwwwww





222

플래그가 왔다 wwwwwwwwwwwwwwwwwwwwwwwww






223

계속 있었냐 wwwwwwwww






246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잖아,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니고 wwwwwwwwwww



이몸 「대학원생이야」



대답했지만 wwwwwwwwwwwwwwwwwwwwwwwwwww

나도 남자니까 wwwwwwwwwwwwwwwwwwwwwwwww



여고생 AB「―」

여고생 C「대단하다, 공부 잘하나 보네요!」



공기 신부 사는 녀석들 중에서 입니까? wwwww

거기다 취직 안됐기 때문에 추천으로 들어간 대학원이야 wwwwwwww


이몸 「아니, 나 완전히 얼빠진 바보라서 말야. 그렇게 굉장한 건 아냐」

여고생 B「www」

이몸 「·····그럼 난 용무가 있으니 여기서 이만, 폐가 되버려서 미안」





249

>>246

용무 wwwwwwwwwwwwwwwwwww

확실히 쿨한 대처다 wwwwwwwwwwwwwwww





251

너란 녀석은 wwwwwwwwwwwwwwwwwww




260

플래그를 좀 더 소중히 해라 wwwwwwwwwwwwwwww






263

용무 = 신부 첫사용





271

나는 오늘부터 자위를「용무」라고 부르겠어 wwwwwwwwwwwww









280

망가진 바구니에 신부를 어떻게든 밀어넣고 자리를 떠나려는 이몸



여고생 B「힘내세요∼」



뭘 어떻게 힘내란 겁니까? wwwwwwwww



여고생 A「다음에 또 봐요 ^^」



또 볼리가 없잖습니까 wwwwwwwwwwwwwwwwwwww



여고생 C「조심해서 가요~」



고마워요····C
생김새도 청초하고, 대응도 어른스러워서, 조금 반했습니다!!



이몸 「아, 응. 그럼 안녕 ^^」





그리고 자리를 떠나온 이몸 wwwwwwww
세 여고생이 걸친 교복은 이 지역에서 가장 편차치가 높은 아가씨 학교의 교복인 고로
어쩌면 또 볼지도 모르겠네 wwwwwwwwwwwwwwwwwwwwwwww

또  보면 뭐라고 말해야 될까 wwwwwwwwwwwwwwwwwwwwww

아무튼 그때는 공기 신부 없음으로 wwwwwwwwwwwwwwwwwwww





끝!!






283

수고했어 wwwwwwwww





284

여고생 B 「힘내세요∼」


뿜었다 wwwwwwwwww





286

끝까지 웃겨줘서 고마워 wwwwwwww




289

힘내라 w




291

힘내세요 wwww 웃었다 wwwwwwwww





292

후일담이 올라오길 기다리겠어 wwwwwwwwwwwwwwwwwww





295

>>여고생 A「다음에 또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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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꼴甲
,

 

1

이런 인생 보낸 녀석도 있구나, 그런 생각으로 봐주면 기쁘겠어.




11

이야기는 내가 중학생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도쿄 언저리에 살았어.
야마나시나 하치오지 방면.
그러니까 도쿄라고 해도 상당히 시골. 주위에 밭이나 논이 많이 있었지.

너희들에게 있어서 흔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사건은 내 소중한 사람이 죽은 일에서 시작됐어.

우선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내가 그 사람을 알게된 건 중학교 1년때의 운동회.
그 사람은 3 학년으로 나보다 2살 연상.
초등학교에서 올라온지 얼마 안된터라, 상급생들이 모두 어른으로 보이던 때였지.
당시 반 대항 릴레이에서 그 사람이 압도적인 격차로 1위로 골인했어.
나는 준비위원이었기에 그 사람을 1위 자리로 안내하면서 말을 건낸 것이 첫만남이었지.





12

나 [빠르다아~ 이렇게 빨리 달리는 여자 처음 봤어.]

처음 봤을 때는 이런 생각밖에 안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남자랑 여자가 서로를 세균같이 보며 반목하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자랑 이야기 나누는 게 썩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선배를 나를 향해 씨잇 웃으며 피쓰 싸인과 함께 1위다~ 라고 말했다.

이에 나는 바짝 쫄아서 시선을 이리 저리 피하다가 결국 무시했다.
더이상 아무런 접점이 없었기에 따로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그 날 이후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생각만 했어.
우리 학교는 교무실이 2층에 있고 1 학년은 3층, 2 학년은 1층, 3 학년은 2층에 있었다.
그러니까 교실을 이동할 때나 교무실에 용무가 있을 때라든지 등, 하교할 때
3 학년이 있는 층을 지날 기회가 많았다.
좋아한다던가 그런 생각도 없이, 2층을 지날 때마다 그 사람 모습을 찾곤 했다.
그러다 이따금 찾아내면 5초 정도 멈춰 서서 바라봤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바보같은 짓이었다 생각하지만...

며칠이 지나, 그 사람이 미술부에 속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발도 빠르고 운동 신경도 좋으니까, 운동관련 동아리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조금 의외였다.




16

그 후 몇개월, 아무 진전도 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여름 방학이 끝났을 무렵, 하교 하는 길에 미술실 문앞까지 갔다.

그 선배랑 또 1명, 이름을 알 수 없는 선배 이렇게 두 사람이 남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일단 가명으로 적어둔다.

동경하던 선배 = 아야노
잘모르는 선배 = 카즈미

멍하니 보고 있던 중 카즈미 쪽이 날 알아차리곤 말을 건넸다.

카즈미 [너, 언제나 아야노 쳐다보고 있던 애지? (웃음) 무슨 용무라도?]

위험해! 전부 들킨 건가!!
당시나 지금이나 숫기가 없는 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달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조금 난감한 상황.

카즈미 [뭔가 이야기하고 싶어서 온 거 아냐? 들어와.]

그러면서 내 손을 잡고 미술실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조금 전도 적었지만, 초등학교때부터 남녀 사이가 안좋았던 경험 뿐인지라.
처음으로 여자 손을 잡은 것과 여자 두사람과 같이 있는 것에 긴장해 딱 굳어 있었다.





19

두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술 숙제인 그림을 아직 다 못 그려서 지금까지 있는거라 했다.
선배들도 그렇구나 하며 이상한 동질감을 느끼던 중 아야노가 말을 건넸다.

아야노 [xx지? 너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들었는데. 키 작네 ww]

당시 내 키는 150cm 정도. 나름 컴플렉스였다.
그 때쯤의 아야노는 160Cm를 조금 넘긴 상태.
중학생치고는 꽤 컸다.

30분 지나 그림을 다 그린 듯 두 사람은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까지 계속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등뒤가 식은땀으로 흔건했다.
빨리 돌아가고 싶다. 계속 이런 생각만 들었다.

카즈미 [xx는 집에 가는 길 나랑 같지? 자주보이던데. 아야노만 완전 다른 방향이네 ww]

어이~ 나는 혼자 있고 싶다구! 너 같은 거 한번도 본 적 없어!!
함께 귀가하고 싶지 않아!!

카즈미 [이제 6시니까, 아야노 집까지 확실히 모셔다 줘야해 ww]





22

순간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모셔다 주다니, 누가? 누굴?
집에 가는 방향이 다른데 어떻게 같이 간다는 거야?
처음엔 카즈미가 말하는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고마운 상황이지만.

우유부단했던 나는 이해도 못한 채 떠밀리듯 아야노와 함께 귀가하게 되었다.
교문에서 나온 뒤 긴 계단을 내려 가 갈림길 도착.

카즈미 [자, 그럼! 아야노를 잘 부탁해 ww]

아야노 [잠깐 w 진짜 어쩌라구~ w]

나 [웃......]

그리고 우리는 카즈미랑 헤어졌다.
헌데 잠깐만... 그제서야 깨달은 사실.
난 아직도 아야노와 이야기를 나눈 일이 한번도 없어.....

미술실에 들어간 이후 입 한번 연 적 없었니까....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될 지 모르겠어.....

나는 천천히 걸어가는 아야노의 조금 뒤쪽에서 따라 붙듯 걸었다.
걸어가는 내내 우리 두사람은 아무 말도 안했다.





27

걷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 근처 길에 도착했다.
잠시 강쪽을 쳐다보던 아야노가 강둑 근처로 걸어갔다.

나는 어째서? 라고 생각했지만, 말로 꺼내진 않았다.

아야노 [오늘 참 덥네~ xx도 땀 잔뜩 흘리고 있고. ww]

나 [아, 아, 예. 참 덥네요...]

아야노 [우리들 이게 첫대화라는 거 알아? ww]

나 [미안해요.....]

아야노 [운동회 때였지. 처음으로 말 걸었던 건.]

나 [....네?]

아야노 [무시당해서 조금 괴로웠어 ww]

나 [...무시라면?]

운동회때 그건가....

나 [아, 아!! 미안합니다!!]

아야노 [뭐 괜찮아 w 그보다 2층에서 누구 찾는 것처럼 보이던데, 누구 찾았어?]

나 [예?!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야노 [그래?]

들키지...않은건가?

그 후 선배를 집 근처 길까지 데려다주고 50분 정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31

놀랍게도 그 후 12월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12월이 시작되고 얼마 뒤, 여느 때처럼 교실 이동을 할 때 였다.
2층 교무실을 지나 안쪽에 있는 특별실에 갈 때 사건이 일어났다.

혼자서 멍하니 걷고 있던 중, 앞에서 카즈미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할말도 없고 해서 무시하고 지나가려는 찰라, 그녀가 스치듯 지나치며
내 교복 상의 주머니에 뭔가를 집어넣었다.

뭐지? 하고 꺼내보니 종이조각이었다.
종이를 접어 만든 쪽지.

내심 두근두근했던 나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35

From 아야노

어라? 어쨰서 아야노? 카즈미에게 받은 편지인데?

[오랜만~♬ 괜찮다면 편지 교환안할래?]

단지 그 한마디만 쓰여진 편지였지만
어째선지 굉장히 기뻐 어쩔 줄 몰랐던 나는 수업에 20분 정도 지각해버렸다.

서둘러 다음 수업 도중 편지를 적었다.

[예!!]

이 딱 한마디. 좀 더 멋진 말은 없었던 걸까...

헌데 문제는 쓴 건 좋지만, 어떻게 건네야 모른다는 거 였다.
나는 숫기가 없는 것에 덧붙여 겁쟁이이기도 했다.

나는 주머니에 편지를 담아둔 채 결국 건네주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다.





37

1주일 뒤 또 교실 이동을 하는 중 이번엔 아야노 본인이 날 불러세웠다.
나랑 같이 있던 친구는 잔뜩 쫀 표정이었다.
제일 많이 쫀 건 나지만.

아야노 [편지, 안 읽었어?]

나는 이때 밖에 없다 생각해서 바로 편지를 꺼내서 건네줬다.
그러자 아야노는 답장은 방과후까지 적어줄께, 라면서 가버렸다.

방과 후, 어떻게 하지...이런 생각을 하면서 귀가 하던 중
교문 옆에 서있는 아야노를 보았다.

부끄러워서 모르는 척~ 하고 그냥 걸어가고 있자니, 아야노가 날 불러 세웠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또 편지를 건네 받았다.

가볍게 고마워요. 라고 말한 나는 그대로 집에 왔다.
편지에는 자기 소개와 1주일이나 기다렸는데 한마디 뿐이었단 푸념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비밀리에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42

내용은 정말 시시한 것들 뿐이었다.
요즘 기준으로 따지면 메일로나 주고 받을 듯한 시시한 이야기를 편지로 나눴다.
당시에도 휴대전화가 있긴 했지만, 나나 아야노 둘 다 가지고 있지 않았다.

몇일동안 편지를 주고 받던 중 아야노가 편지로,

[이번 종업식 다음날, 영화 보러 안갈래? 나 타이타닉 보고 싶어 w]

타이타닉이 뭔지는 잘 몰랐지만, 일단 OK인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변함 없는 매일이 계속됐다.
물론 편지는 매일 1~2통 정도 계속 교환했다.

그러다 종업식날이 왔다.
겨울 방학이 된 건 기뻤지만, 아야노를 볼 수 없게 되서 조금 외로웠다.

다음날 , 근처 역에서 만난 우리는 도심부까지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나는 이 근처는 백화점외에 가본 곳이 없어, 영화관이 어디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야노에게 전부 맡길 수밖에 없었다.





51

영화관에 가기 전 뭔가 먹지 않을래? 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에 고민할 틈도 없이 우리는 근처 맥도날드에 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 가게 쇼윈도에 비치는 우리 모습을 보고있자니 어째선지 굉장히 기뻤다.
좋아하는 사람과 처음으로 하는 데이트.

뭐....키 차이는 위험하지만....

쇼윈도를 보고 있던 나와 아야노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야노 [키는 금방 클테니까 신경 쓰지마 ww 지금 얼마야?]

나 [150cm 정도 입니다.]

아야노 [작아. w 꼬맹이. w]

나 [꼬맹이가 아니에요.]

아야노 [그래~ 꼬맹이가 아니지~]

그러면서 아야노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행복했어.

식사를 끝낸 뒤 영화관에 도착. 티켓을 사서, 안에 들어갔다.
아야노는 팝콘과 팜플렛을 샀고, 나는 음료수와 팝콘.

팜플렛을 보고 처음으로 알았는데, 타이타닉은 배에 대한 이야기였다.
배 매니아인가?
이런 생각을 했다.
아야노와 잡담을 나누며 처음 온 영화관의 분위기에 조금 긴장하는 사이
영화가 시작됐다.



TV로 본 적 있는데...
이럴 때 주위가 어두워지면 뽀뽀를 하거나 손 잡거나 하는 게 있던데...
...사실 나는 그게 목적이었어...





56

영화에서 잭이 로즈와 만나는 장면을 보고서야 연애 영화라는 걸 알았다.

뭐 그건 어쨌든 간에.

곁눈질로 아야노를 힐끔하고 쳐다보니, 그녀는 스크린에 열중해있었다.
손을 잡은 찬스는 앞으로 100분!!

10분 정도 영화같은 건 보지도 않고 나 자신과 싸워야 했다.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입에서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이 왼손을 아야노의 오른손 위에 싣는 것만으로 끝난다...

....힘내라.....나.

나는 오른손으로 팝콘을 들었다.
아야노도 손잡는 걸 의식한 것인가,
왼손으로 팝콘을 들고 있었다.
지금이다!!! 잡아라아아아아아!!


나는 왼속을 들었다!!





59

그리고 내 왼손은 아야노의 오른손 위를 통과해 아야노의 팝콘속으로...

나 [파, 팝콘 조금만...]

아야노 [에? 아, 여기.]

나는 겁쟁이였다아아아아아!!!
오른손에 팝콘이 한가득 들려있음에도 아야노의 팝콘까지 건네 받았다.

그리고 어떻게 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가 끝나 귀가 하기로 했다.
물론 나는 자연스레 그녀가 귀가하는 걸 에스코트하기로 했다.





62

아야노와 같이 천천히 논길을 걸었다.

주위는 금새 어슴프레해졌지만 달빛이 있어 불편하진 않았다.
이것 저것 잡다한 이야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그러다 아야노를 처음으로 데려다줬던 길까지 왔다.

아야노 [자, 그럼 다음에 또봐 w 추운데 고마웠어.]

나 [아, 예. 그럼 다음에 또 w]

아야노 [아~ 잠깐만 기다려.]

아야노는 손에 들고 있던 봉투에서 머플러를 꺼내 내목에 감아주었다.

아야노 [감기 걸릴지도 모르니까 w 그것 감고 가 w]

나 [가, 가, 감사합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위험할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워 곧 쓰려질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아야노가 말했다.







66

아야노 [그런데 말야...우리들...]



아야노 [사귀는 건가?]








.............



............예?




69

소년의 머리로는 미쳐 다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당시 나는 숫기도 없는데다, 겁쟁이에 꼬맹이였다.
거기에 사귄다 = 고백하고 난 뒤, 이란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에 wwwwww 그럴리가요 wwwwwww]



바보같은 짓을 해버렸다....



아야노 [그렇지? www 미안, 이상한 소리해서 www 그럼 조심해서 가 w]



헤어지고 난 뒤 제정신이 아닌 채 집까지 갔다.
대체 뭐가 뭔지 몰랐다.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이 날 좋아하고 있단 말과 같은 소릴한 것이다.

머플러에서 풍기는 좋은 향기와 조금 전 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집 근처까지 와서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샀다.
그러다 깨달았다.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였네...


이브에 데이트 권유, 이브에 반쯤 고백.....

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추운 날씨에 아랑곳 않고 음료수를 단번에 마신 나는 달렸다.
정말 바보같은 나 자신을 책망하면서.





75

달리고 달려서 집까지 왔다.
그리고 그날은 그냥 잤다.





80

다음날, 크리스마스
아침 일찍 일어나 머플러를 한손에 든채 자전거를 타고 선배네 집으로 향했다.
그 근처는 밭 투성이에 집이라곤 열 채 뿐이니까.
문패를 확인하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야노의 집을 찾아냈다.

벨을 눌렀다.
아야노의 어머니가 나와서 바닥 긴장한 나.


나 [아, 안녕하세요. 선배있습니까? 아, 아니, 아야노 씨 있습니까?]

어머니...조금 웃었다.

어어미 [아~아. 지금 자고 있는데. 잠깐만 기다려봐. w]

자고 있었던 건가아아아!!
좀 더 늦게 올걸!!

5분 정도 지나 아야노가 나왔다.

아야노 [우리집 어딘지 알고 있었어? w]

나 [저...머플러...돌려주려고...]

아야노 [에? 아, 아하하. 그거 마음에 안들었어? xx가 어떤 거 좋아할지 몰라서. 미안...]

머플러에 쓰인 영어 두 문자, 제 이니셜이었습니까아아아아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습니까아아아아아

우아아아아앗 wwwwwwwww
지금 생각해도 창피해서 죽고 싶어 wwwwwwwwwwww





85

나 [그, 그랬습니까....미안해요...미안해요.....]

아야노 [아니 w 괜찮아, 괜찮아 w 갑자기 이런 거 받아도 기쁘지 않을 텐데.]

나 [아니, 그렇지 않아요. 고마워요. 나, 눈치못채서 미안해요. 고마운데...우...]


그리고 나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울었다.


아야노는 깜짝 놀랄 표정을 짓더니, 잠깐 기다려라고 말하곤 안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좋을지 몰라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얼마 뒤 옷을 갈아입은 아야노가 나왔다.

아야노 [기다렸지 w 저기 공원에 좀...]

어리둥절한 채 공원까지 같이 갔다.
그리고 어제 일에 대한 화제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아야노가 하는 말만 들었다.

아야노 [나, 벌써 갈 고등학교는 정해졌지만 당분간 못볼거 같아. 공부 때문에 바빠서.]

나 [고등학교 공부는 역시 힘든겁니까?]

아야노 [아니...나 앞으로 해외에 나가고 싶거든.]

나 [...예? 해외에 있는 고등학교입니까?]

아야노 [대학을 해외로 가려고.]



....그런 거 못들었어.





86

이야기를 들으니 대학을 아시아 다른 나라로 가고 싶다는 것 같았다.
어떤 나라로 갈 거냐 물어보니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 3년이나 남았지만 굉장히 싫었다.
그때 나는 또 조금 울었다.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도망치려는데 아야노가 등뒤에서 날 꼭 껴안았다.


우리 두 사람은 아무말도 안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하지만 눈물은 계속 흘렀다.

아야노가 내 몸을 돌려 정면으로 마주보며 꼭 껴안아줬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작기 떄문에 내 얼굴을 아야노의 가슴에... (이하 생략)

조금 솟아오른 텐트를 숨기면서 울었다.




그 날 이후 여러가지가 바꼈다.





89

그 날 이후 어째선지 아야노는 날 피했다.
용기를 내서 편지를 써 건네줬지만 답장이 없었다.

뭔가 미움살 짓을 한 건가, 고민하는 사이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아야노는 졸업했다.





93

마음속 깊이 아야노에 대한 그리움을 숨긴 채 아야노가 없는 중학교 생활을 적당히 즐겼다.
연락을 하고 싶어도 연락처를 모르니까 별 수 없었다.
그 무렵, 별로 쓸 일은 없었지만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
동성 친구 한테서만 연락이 왔지만 학교에 갈 때는 언제나 손에 들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다.

3 학년, 봄이 됐을 쯤 카즈미를 봤다.
카즈미 라는 걸 간신히 알아챌 정도로 변해있었다.
생김새도 어른스러워진데다 화장도 하고 스커트도 짧은 걸 입고 있었다.
저쪽도 날 알아챈 듯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카즈미 [혹시 xx? 굉장히 오랜만이네 ww]

시끄러워.

카즈미 [아야노랑은 잘 나가? ww]

모르는 건가?

나 [아니, 졸업한 이후 못 봤습니다.]

카즈미 [그럼 아야노 메일 주소 알려줄까?]

....당신은 신입니까?





그렇게 아야노의 메일 주소를 손에 넣었다.






96

대체 몇년만인 걸까.....

하지만 벌써 고등학생이니까 남자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고...귀찮아 할 수도 있고...
이런 고민을 하면서 계속 연락을 못했다.

그러다 메일 주소를 안지 이틀 뒤, 메일을 보내봤다.

[오랜만입니다. xx 입니다. 기억나세요?]

아무런 재미도 없는 메일이었다.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어 OTZ





98

다음날 아침, 메일이 왔다.
아야노에게서,

[오랜만~ 간신히 연락이 됐네 ww 그리운걸 w]

지금까지 굳이 의식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만날 수 없게 된 이후,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메일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날 보며 걱정해주셨다.
그리고 그 날, 난생 처음 꾀병을 부려 학교를 쉬었다.

아야노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추억에 대한 이야기나,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는지에 대해.
하지만 이브날에 대한 화제는 꺼내지 않았다.
다음날 크리스마스에 대한 것도.

그리고 아야노가 남자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는 걸 알게됐다.
어째선지 이상하다 생각되지 않았다.





100

나는 확실히 둔한 녀석이다.

아야노와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2학년이 시작될 때쯤 아야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야노「오랜만 w xx에게 할말이 있는데 모레 아침에 볼 수 있을까?]

물론 OK했다.
나도 고등학생이 됐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을지 대충 예상이 됐다.
여자에게 고백을 하게 하다니, 나랑 녀석은 정말 한심하구나.





103

당일날, 아침 8시에 약속 장소에 나갔다.

5분 정도 뒤, 아야노가 왔다.

아야노 [늦어서 미안 w 그런데 카즈미는 아직 안왔어?]

.....예?

그 후 서로 아무 말 없이 5분 정도 있자니 카즈미가 왔다.

카즈미 [아...xx 왔어? 괴로울 텐데...]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당신은.

아야노 [...아직 말 안했어.]

....저기 아야노 씨, 그러고 보니 그 여행 가방은 대체 뭡니까?





105

아야노 [나 오늘 말레이지아로 유학가.]

그런 소리 못 들었어.

싫어. 어째서.

말레이시아는 대체 어디야?

나 [에.....]

아야노 [예전에 유학가고 싶다고 말했지? w 지금부터 노력하려구.]


나 진짜로 울었다.
사람들 많은 역 앞에서
고등학생이 진짜로 울었다.





106

나는 도망쳤다. 그 장소에서.
눈앞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서, 그대로 도망쳤다.

이후로도 아야노나 카즈미는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됐다.
물론 아야노를 한번도 잊지 않았다.
몇번 여자 친구를 사귈 기회가 있었지만, 전부 거절했다.

나는 아야노를 따라 유학을 갈 생각이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다 관련 추천도 못받았기에 나 스스로 학교를 찾아야 했지만.
무작정 말레이시아 땅을 밞았다.
아야노를 만나고 싶었으니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으니까.





112

말레이시아의 선웨이라는 대학에 등록했다. 어학과로
하지만 같은 나라에 왔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찾아낼 수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세상에는 신이 정말로 있었다.

선생님이 같은 과에 일본인이 3명 있다면서 소개를 해줬는데,




그 3명 중에 아야노가 있었다.





118

아야노는 진심으로 놀란 것 같았다.
이에 나는 거짓말로 해외에 흥미가 있어서 유학왔다고 전했다.

그 날, 일정이 끝난 뒤 따로 만나기로 했다.






182

아야노 [xx, 정말 오랜만이네 w 어떻게 여기에?]

아야노 [그때 유학에 대한 거 숨기기도 했고 아무 말 없이 가버려서 미움받았다 생각했어.]

나 [....그 때는 미안했어요....정말....오랜만이에요...]

그리고 나는 또 통곡했다.
아야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봤다.
겁쟁이인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기껏 여기까지 왔건만.

나 [...미안해요. 그 때는...유학간단 말을 듣고...가는 건 알았지만, 언젠지는 몰라서...]

아야노 [사실은...아무 말 않고 가려고도 했어...왜 w 중학교 때 이브날도 차였잖아 w]

나 [아닙니다!! 나 그때는 눈치채질 못했어요!]

나 [저 그때는 여자랑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어서....]

나 [...부끄럽기도 했고....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생각해왔어요.]





185

나 [나, 아야노 씨를 좋아합니다!!]

나 [기분 나쁘실지도 모르지만, 전하고 싶었어요. 그걸 전하고 싶어서 유학왔습니다.]

나 [아야노 씨와 함께 있고 싶어서...]

나는 계속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눈을 똑바로 쳐다 보며 고백하자고 결정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나는 눈물, 콧물을 있는대로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아야노 [사실...나도 xx 좋아했어. 중학교 때부터 계속 w 운동회때 처음 본 순간, 기억해?]

나 [...예.]

아야노 [그 때 첫눈에 반한 것 같아 ww]

나 [...그렇습니까? 나, 나도 그 날 이후 아야노 씨에 대한 생각만...]

아야노 [아야노라고 불러줘 w 그때 xx가 조그맣게 수고했습니다. 라고 했었는데.]

나 [아...그랬었나요?]

아야노 [응, 그 때 이상하게 기뻐서 말야 w 계속 두근 두근 거렸어 w]





190

솔직히 기억 안났다.


나 [미안해요. 기억 못해서...]

아야노 [괜찮아 w 그리고 존댓말은 그만해.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으니까 w]

나 [예, 아니 응. w]

아야노 [...있지, 나 너 좋아해.]

나 [나도....아야노를 좋아해!!]

아야노 [그럼 우리 사귀는 거네?]

이번에는 아야노도 울었다.
나는 그녀가 어째서 우는지 몰라 당황했다.

나 [에?! 왜?! 어째서?!]

아야노 [간신히 말했네 w 늦어, 이 바보 w ]






193

그 날, 아야노는 학교 근처 10 분 거리에 있는 내집에서 묵었다.
중학교 이후 서로 무슨 생각을 했는가, 어째서 그런 일을 했는가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타이타닉 봤을 때, 내가 자폭해버린 일도 이미 알고 있었다.
죽고 싶다.

아야노는 그런 점이 귀여웠다고 말했다.
그런 날 보고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싶지 않단 생각도 했었다고.

그리고 이브날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198

아야노에게 들은 이야기론,

집까지 에스코트해줘서 기뻤다.
하지만 어떻게 고백해야 될지 몰라서 쩔쩔 맸다.
머플러 건네줄 때도 간신히 용기를 짜낸거였다.
용기를 내서 건네줬건만 다음날 반환.
손으로 짠 머플러였는데...
고백했지만, 차였다고 생각.
그래서 다음날 크리스마스에 만났을 때 꼭 껴안는 걸로 끝내려 했다.


나 그 이야기를 듣고 또 울 뻔 했다.





201

즉, 오랜 시간동안 우리들은 계속 엇갈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다.
이제부터 함께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날 함께 잤다.
이에 대한 내용은 생략한다.

그리고 한동안은 평범한 커플들처럼 보냈다.
함께 버스로 싱가폴이나 타이에 가거나.
일본에 일시 귀국했을 때는 서로 상대 부모님에게 소개되었다.

아야노쪽 부모님은 나에 대해서 전부 알고 있었지만.
그러다 올해 봄, 아야노가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단지 영어만 공부하고 싶었으니까, 같은 시기에 졸업했다.





207

아야노는 이미 말레이시아에 있는 일본계 기업에 이력서를 내서 취업이 확정됐지만,
나는 아직 일자리를 잡지 못했다.

아야노는 일본에 들어가서 같이 노력하자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 결혼할 생각이었다.
반드시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귀국 후, 아야노나 나는 각자 자기 일을 하며 달콤한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 같이 밥 먹으러 가거나 여행을 간 적은 있어도
동거는 처음이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 같이 있었단 느낌도 들었지만,
왠지 부끄러워서 욕실도 함께 쓰는 게 거북했다.

하지만 점차 우리들의 생활도 순조롭게 변해
침대에서 가위바위보로 어느쪽이 팔베게를 하느냐, 라는 걸 겨루기도 했다.

그러다 올해 여름.






221

아야노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해서, 에노시마에 갔다.
이때쯤에는 그녀와 같이 있는 생황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무엇을 하던 간에 즐겁워서.
정말 사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꼈다.
바다에 가기 전엔 둘 다 수영할 생각이 없었지만,
실제로 와보니 헤엄치고 싶어져서, 그걸로 투닥 거리거나
돌아갈 때도 급행 전철을 타는 게 좋으냐, 아니냐도 투닥 투닥.
나, 작은 일이지만 행복 했어.






231

헤엄치고 싶었지만...에노시마는 바다가 더럽기도 하고 수영복이 비싸
결국 바다에는 못 들어갔다.
그걸 싸운 끝에...

아야노 [그럼 내일 오오시마 안가볼래?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어 w]

오오시마는 도쿄에서 고속 페리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섬으로 바다가 깨끗하다는 것 같다.

나 [하지만 티켓 예약도 해야 되고, 내일 꺼는 예약이 안돼.]

그러자 아야노는 체념 모드.
하지만 나는 아야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때 우리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였는데, 어머니가 카와가와 근처에 살고 있었기에
잠시 들러서 티켓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그때는 추석 때쯤이라 어머니 집에 우리 형네 애들 두 명이 놀러와 있었다.






246

아야노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사이, 티켓에 대해 알아봤지만
최소 3일 전에 예약을 해야 된단 것만 알게 되었다.
아야노의 휴일은 내일까지니까 결국 불가능.

어머니 [수영장은 어때?]

아야노 [그거 좋겠네요. xx 수영복 사러가자~]

아이 [수영장 간다!!]

여름철이라 사람이 엄청 많을 것 같았지만, 벌써 가자는 분위기가 되버려서
어쩔 수 없이 근처 있는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그 날 오후는 수영복을 사거나 쇼핑을 한 뒤, 어머니 집에 돌아왔다.





250

다음날, 수영장에 갔다.
에노시마에선 수영할 수 없었으니까, 여기선...

그런데 나는 여자친구라고 아야노 밖에 없고, 이런 유원지나 수영장에
여자 친구와 같이 오는 건 이야기로 밖에 못들었어.

그래서 왠지 들뜨는 바람에 워터 슬라이더에서 몇번이나 같이 내려오거나 하곤 했다.
그늘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유수 풀에서 장난 치기도 했다.
그리고 귀가하는 길에 쇼핑도 잔뜩했다.
돈을 너무 쓴다고 다투기도 했어. 행복했다.
너무나...즐거웠다.





256

그대로 전철로 집까지 돌아왔다.
수영장 갔다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엄첨 지치잖아.

아야노도 피곤했는지, 전철 안에서 잘 잤어.

이건 무슨 드라마의 한장면일까 w
이런 생각을 했어.
그리고,








아야노는 눈을 뜨지 않았어.





281

다음 역에서 전철을 내려, 역무원이 황급히 구급차 불러 줬지만.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어.

병원에 도착하고 얼마 뒤, 그녀의 부모님이 도착했다.
부모님이 오는 건 드라마로 자주 봤지만...나 연락 안했는데...
어떻게 알고 온 걸까....

아야노의 아버지가 울고 있었다.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야노의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심근 경색이라는 구나.]





심근경색? 그게 뭐야?





295

심근경색

심장에 영양을 공급하는 관상 동맥의 혈류가 느려져
심근에 국소적 빈혈이 일어나 세포가 괴사한 상태
통상적으론 급성으로 일어나는 급성 심근경색을 이른다.






298

다음에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운동을 자주 안하는 사람이 몸을 격하게 움직이거나. 수영장같은 곳에서 숨을 자주 참거나
한층 더 극도로 피로할 경우 심근경색이 될 확률이 올라간다고....










원인은....나인가...





317

그녀의 아버지가 이제 괜찮으니까 오늘은 돌아가라고 말했다.
아야노는 자신들이 보고 있겠다면서.


그 말을 듣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그 날 밤 나는 아야노의 옷을 껴안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칭찬받으려고 방청소를 했다.
접시 닦았다.
세탁을 했다.

훌륭하다고 칭찬 받고 싶어서, 또 머리 쓰다듬어줬으면 해서.





329

놀래켜 주려서 비밀리에 봤던 면접.

채용됐단 통지서를 멍하니 내려다 봤다.

아야노가 좋아해주겠지?
집 청소도 했고, 취직도 했으니까.

왜 아직도 안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또 아야노 옷을 끌어 안고 잤다.





337

다음날, 전화 벨 소리에 눈을 떴다.
확인해보니 착신 횟수만 8번.
모두 아야노에게서 온 전화였다.

다행이다. 칭찬받을 수 있어.
일단 사과하자.
그리고 언제나 처럼 응석 부리는 거야.

전화를 걸었다,







어째서 그녀의 아버지가 받는걸까.





337

휴대폰 전원을 끄고 고향에 가봤다.
아야노와 이야기를 나눴던 역 앞.
머플러를 받았던 길거리.
꼭 껴안아줬던 공원.
아야노의 집앞까지 왔지만 아무도 없었다.





374

결심했다.
아야노에게 전화를 걸기로.


나 [여보세요...아야...]

아버지 [...xx인가?]

나 [......]

아버지 [.....이제 알고 있지않나....]

나 [뭘.....]








아버지 [아야노는 행복했다고 생각하네. 그 애 방에서 옛날 자네와 교환하던 편지를 찾았어.]

아버지 [전부 깔끔하게 보관되어 있었네.]

나 [...어제...어제 괜찮다고 했잖아요!! 보고 있겠다고 했잖아요!!]

나 [아야노는..아야노는 어디 있어!!]

울면서 외쳤다.






396

나 [...아야노 어디있습니까...]

아버지 [...잠깐 만나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나 [...예...]


그리고 역앞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만났다.

불안했다.
아야노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데.
아야노가 웃는 얼굴을 보고 싶은데.
아야노를 보고 싶은데.

빨리 볼 수 있게 해줘.



아버지 [아야노는...행복했을 거야. 자네는 그 애를 끝까지 행복하게 해줬어.]

나 [......]

아버지 [이거...아야노가 자네한테 썼던 편지 5통. 아내가 자네에게 건네주라고 해서...]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편지를 받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를 자기 차에 태웠다.





403

도착한 곳은 그녀의 집이었다.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다.
뭐하는 거야.

어째서 아야노 사진을 올려놓은 거야.
의미를 모르겠어.

아야노는....편안한 얼굴로....
평소에는 거의 하지도 않던 화장을 조금 진하게 한 채...





조용하게 자고 있었다.





414

경찰한테 나한테 당시 상황에 대해 질문 받았다.
그리고 다음에 전화해달라며 그녀의 아버지한테 전화 번호를 건네 받았다.

밤에는 예전에 봤던 사람들과 만났다.
2살 연상의 선배들.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다.
빨리 아야노와 둘이서 있고 싶다.

방을 청소한 것.
접시 닦은 것.
세탁한 것.
취직한 것,

전부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다음날, 나는 고별식에는 가지 않았다.
작별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도 내방에는 아야노의 물건들이 가득 차 있다.

편지는.....아직 읽지 않았어.....


읽을 용기가 없어서.....





425

편지
읽고 왔다.
잠깐만 시간을 줘.





449

12월 4일

갑자기 이상한 편지, 미안해
그리고 카즈미한테 부탁해서 건네준 거 미안해.
만약 괜찮다면 xx에 대해 알고 싶기도 하고...
편지 교환 안할래?





452

12월 7일

이걸로 끝낼까...
몇번이나 편지 보내서 미안.
기분 나쁠지도 모르지만...
편지, 싫으면 싫다고 카즈미한테라도 말해줘.





459

12월 15일

그럼 xx는 아직도 여자 친구 없는 거네 (웃음)
나 노려도 괜찮은 건가? (웃음)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
괜찮다면, 이브날 데이트 하자.





466

12월 24일

오늘, 즐거웠어.
내가 멋대로 착각한 건가...
머플러로 알아채줄 꺼라 생각했는데, xx는 나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네 (웃음)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있어줘! 나도 잊을테니까!





472

2월 14일

오늘, xx를 위해서 처음으로 수제 초콜릿 만들었어!

제대로 먹어야 돼?
진짜 초콜릿 이니까 (웃음)

나 xx, 진짜 좋아해.






489

그 때부터 엇갈렸던 건가....
울고 싶다.
분하다.

낚시가 아냐.
최근 vip에서 여자 친구한테 메일 보낸다던가 하는 내용이 많아서...
함께 있을 수 있는 게 진짜 행복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서.
좀 더 소중히 해줬으면 해서 세운거야.






500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해서, vip에 스레 세웠다.

스레가 사라지는 게 빠르지만...
사라지고 나면 볼 수도 없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543

장시간 읽어줘서 고마워.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데...
전해졌으려나?

소중한 사람이 있는 사람은 사소한 시간이라도 소중히 여겨줘.
없는 사람도, 분명 그럼 사람이 나타날 테니까 그때를 소중히.


그럼, 이만.





581

이제 안쓸 생각이었지만....
역시 혼자 있는 건 괴롭다.
내방에는 아직도 아야노의 물건이나 옷이 있다.
보고 있자면 괴로워.
물건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사람은 갑자기 사라질 수 있어.
예고도 없이.
너희들, 지금을 소중히 여겨줘.






729

생일날 돈도 별로 없으면서 무리해서 비싼 케잌 사가지고 왔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741

칠석날, 이런 걸 써서 진짜 혼났었지....










758

이젠 수면제가 없으면 잠이 안와.
하지만 견뎌내야겠지.






761

모두들 정말 고마웠어.
그럼 안녕.


Posted by 노꼴甲
,

1

새로 세웠다


6

여기인가?


15

그럼 계속해서


22

>>20

왔다! 기다리고 있었어!


27

계속 진행하자구!


33

스크립트 때문에···새로 세운 건데, 안 좋았던 건가?


37

>>33

너는 잘 했어.
최근 스크립트로 민폐주는 녀석들이 대량으로 발생했으니까



46

그럼 다시 신청 받을께

>>55


54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좋아해~!!!


55

그 거 OK라는 소리?


역주

여기서 기억 안 나실 분을 위해, 소꿉친구가 보내온 메일 내용

제목 (없음)

본문

(이상한 이모티콘)
나도 네 이상한 점이나 상냥한 성격같은 건 좋아해(웃음)


65

>>55

꽤 GJ


66

>>55

보냈다



92

왔다···

제목 (없음)

본문

어쩔 수 없으니까 노예로 해줄께 (웃음)
그런데 뭐가 오K야?


··· 나 싫어하는 건가



100

싫어한다기 보단 딱히 눈치 못 챈 것 같은데



119

다시 보낸다

>>130


129

wktk


130

일생 노예라도 좋습니다. 아가씨


138

>>130

미묘하다...


148

>>130

보냈다



163

메일 왔다

제목 (없음)

본문

좋아, 노예로 결정이야 (웃음)
우선 처음으로∼···숙제 보여줘!!
라기 보다 우리 집 와서 같이 공부하자 (웃음)


165

응? 이건 성공?


166

>>163

어? 너무 순조 로운데?


167

공부하러 오라는 것에 뭔가 의미는 없을 거야 wwwwwwww
분명 수험 공부니 뭐니 하는 생각밖에 없을 테니까wwwww



170

뭔가 될지도 모르지.


174

>>167

일단 갔다 와라. 보고는 뒤에 하고
뭔가 신청 받아서 시험해봐!



176

좋아 신청 받는다

>>180

서둘러 준비 가능한 걸로 부탁해 wwwwwwwwwwww


179

「노예보단 역시 연인이 좋은데」


180

공부도 좋지만 우선 데이트 하자구


185

>>180

GJ! 보냈어 wwwww

먹히면 데이트로 넘어갈 수 있나? wwww


186

좀 더 적극적으로 밀어 붙이라고!


190

>>185

여기까지 오니 뭔가 끝을 보고 싶다


196

답변 왔어···

제목 (없음)

본문

데이트 몇번 이라도 할 수 있잖아!
오늘은 공부하고 싶어! (웃음)
주인님이 말하는 건 들어야지, 너 노예잖아? (웃음)

데이트는 무리지만 같이 있을 시간 생겼어 wwww

내가 할 행동 두 개만 신청 받을께


>>210


203

>>196

컥, 이건 진짜로 성공인가?


210

wktk


211

>>205

이건 다시 받아야 겠네 wwww


224

다시

>>235


233

주인님, 이제부터 포치라고 불러주세요.


235

주인님 손등에 키스


241

>>235

이건 이제 노예 확정인가 wwwwwwwwwwww


242

>>235

노예라는 이름의 그이 인가 wwwww


245

>>1은 이제 노예남이라고 부르는 건가 www


252

오k, 알았어

준비하고 나서 곧 출발이야!!


255

>>252

할 생각이냐!!!


Posted by 노꼴甲
,